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하루 두 번 맞는 시계

자신만의 개똥철학을 설파하며 전국을 유랑하는 개똥거사가 국민님을 찾아왔다. 집안일로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차에 늘 조언을 아끼지 않는 거사가 찾아오니 국민님은 여간 기쁘지 않았다. 지난 몇 달간 그를 괴롭히던 문제가 이미 풀려버리기나 한 듯 기쁘게 거사를 맞아들였다.

그동안 집안일을 집사 한 사람에게 맡겨두고 있었는데, 이 집사가 큰 사고를 일으킨 것이었다. 평소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아들은 길길이 뛰며 당장 쫓아내자 하는데, 오랫동안 그를 믿고 부리던 아내는 의리에 맞지 않는다고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집사 쫓아내는 일도 일이지만, 아내와 아들이 다퉈 말도 안 하고 토라져 있으니 그야말로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평소 그의 좌우에서 늘 도움을 아끼지 않던 두 사람이니 더 골치가 아팠다.

간단히 문안 인사를 받은 국민님, 무릎을 당겨 앉더니 다짜고짜 질문부터 던진다.

"그래 어찌하면 좋겠소. 그간의 사정이야 들어서 알고 있겠지요? 이 집사 놈을 당장에라도 쫓아내 버려야 옳겠소, 그래도 그간의 정리를 생각해서 혼뜨검을 낸 후 용서하는 것이 옳겠소? 시원한 대답을 좀 주시오. 그리고 내 양옆에 앉아 있는 이 두 사람도 화해를 좀 시켜주시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거사가 봇짐을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 놓는다.

"여기 두 개의 시계가 있습니다. 이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어떤 걸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나는 하루에 두 번 정확히 맞는 시계이고, 다른 하나는 늘 시간이 조금씩 늦지요. 부인과 영식께서도 함께 골라 보시죠."

먼저 국민님이 입을 연다. "하루에 두 번 정확하다? 아니 이건 고장 난 시계가 아니오? 고장이 나서 바늘이 움직이질 않으니 당연히 하루에 두 번 맞는 것이겠지. 이쪽 건 시간이 늦어지긴 하지만 움직이긴 하는군? 둘 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난 움직이는 시계를 택하겠소." "저도 마찬가지예요." 부인과 아들도 이번에는 이구동성이다.

"그렇습니다. 이 시계는 고장 난 시계입니다. 하루에 두 번은 정확하게 시간을 가리키지만 아무도 이 시계를 선택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시계는 일종의 극단(極端)입니다. 흑과 백이라고 말씀드려도 좋을 것입니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반면 다름을 용납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반면 조금씩 늦어지는 시계는 비록 정확하진 않지만 바로잡을 수가 있습니다.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합니다. 이 세상 일이 늘 명명백백하고, 옳음과 그름만 있을 수 있을는지요. 그것은 바로 이 고장 난 시계와 같지 않을는지요.

부인과 영식님께 말씀드립니다. 두 분이 다투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집안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한 분의 뜻이 더 훌륭하고 다른 분의 생각이 못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겁니다. 뜻은 같으나 방법이 다를 뿐이지요.

한집안의 가족이라고 해서 불화와 다툼, 갈등이 없을 수만은 없습니다. 한 가지에서 나온 나뭇잎이라도 다 모양이 다르듯, 가족끼리라 하더라도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다 다른 게 당연하지요. 그래서 다투기도 하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남이 될 수는 없지 않겠는지요. 내 어버이이고 내 자식인데 어찌 등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기에 가족이 아닐는지요. 시계가 잘 맞지 않는다고 아예 두드려 깨버리겠습니까. 좀 성가시긴 하겠지만 고치고 맞춰 사용해야 하지 않을지요.

국민님, 집사 문제는 알아서 처결하십시오. 집사야 갈아치운들 어떻고 용서하고 데리고 있은들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가족은 다른 문제입니다. 가족은 영원히 내 곁에 있을 사람들입니다. 어려울 때나 기쁠 때나 함께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진정 무엇이 소중하겠습니까. 하루 두 번만 맞는 고장 난 시계입니까. 조금씩 시간이 틀리긴 하지만, 그래서 귀찮고 성가시긴 하지만 살아 있는 시계입니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