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외국 생활을 하는 중이다. 첫해 영어를 배우러 학교에 다닐 때는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신기하고 들뜬 마음으로 보냈다. 그들과 깊은 우정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밥을 같이 먹고 공부를 같이 하고 카페를 같이 다니면서 그들의 표정, 몸짓과 문화적 차이들을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일본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다가 온 미즈키는 옆방에 사는 이가 마약에 취해 고성방가를 일삼는 바람에 플랫을 부랴부랴 옮겨야 했다. 마약은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고등학교에 서너 달에 한 번꼴로 마약견을 데리고 와서 검사한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콜롬비아에 가족을 둔 채 영어 점수가 필요해서 온 후앙은 폭력과 부패와 마약의 나라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이민을 가고 싶다고 했다. 이 아저씨는 안면을 트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미식 인사를 하여 무척 당황했다. 이들은 만나면 뺨을 대고 입으로 뽀뽀 소리를 낸다. 남미 사람들은 대체로 열정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족끼리도 포옹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하자 무척 놀라는 표정이었다. 플랫에서 금요일 밤 파티를 즐기고 춤추는 이들은 콜롬비아 사람들이라고 후앙이 말했다. 러시아에서 온 똑 부러지는 에핌은 22살에 석사를 마쳤다고 했다. 이른 나이부터 학교가 시작되는 나라들이 많다. 뉴질랜드도 5살부터 학교가 시작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치원 과정부터 학교 개념으로 바꾸고 10대 중반부터는 진로를 진지하게 탐색하고 다양하게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도 좋겠다 싶다. 뉴칼레도니아에서 온 17살 잘생긴 앙리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서 영어를 공부한다고 했고, 프랑스로 유학 가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17살 중에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발견한 청소년이 이제는 좀 많아졌을까. 멋있고 당당한 23살의 스위스 여성 앨리스는 프로파일러를 꿈꾸고 있었으며 4개 국어를 한다고 했다. 자유로워 보였다. 중국에서 온 부자 마이클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는데 아쉽거나 급할 게 없는 듯했다. 미래까지 지속할 것이 확실한 부유함은 그에게 자기발전이나 동기부여에 장애가 되는 듯했다.
여기서 만나본 여러 사람 중 콜롬비아 사람들이 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정치적 부패는 젊은이들에게 자기 나라를 탈출하고 싶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였다. 리나는 워크 비자로 와서 밤늦도록 일하면서 공부하고 있었으나 가능하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어떤 나라가 살기 좋을까. 정치적 부패가 청산되고 자기 삶을 감당할 자원으로서의 교육과 실력을 자기 재량껏 쌓을 수 있고 그게 무엇이든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 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 그리하여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따뜻하게 포옹하면서 서로 대견해하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사회. 내가 꿈꾸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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