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투고] 앞산공원 유감

벌써 제주에는 매화가 활짝 피었다는 소식을 접하니 절로 봄기운이 나는 듯하다. 봄은 우리에게 따뜻함, 희망, 설렘을 느끼게 하는 그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계절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봄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때, 대구 앞산공원에서 겪었던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나이 어언 70대 후반으로,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고교 동기들은 산악회를 조직하여 매주 토요일 산행을 하고 있다. 매주 그러하듯이 필자를 비롯한 산악회 일행 16명은 산행을 하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준비해 온 다과를 먹으며 그날 산행과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곤 하였는데 칼바람이 매섭게 불던 지난 2월 11일, 우리 일행은 안지랑골목, 은적사로 이어지는 자락길을 걸으며 앞산케이블카 부근에 도착해 잠시 쉬게 되었다.

정월 대보름이었던 그날은 아주 차가운 영하의 날씨에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우리는 몸도 녹일 겸 일행 중 한 명이 가지고 온 다과와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케이블카 건물 1층의 커피숍으로 향하였으나 마침 영업을 하지 않았다.

부근에 달리 쉴 곳도 마땅치 않아 부득이 햇볕이 들고 바람이 덜 부는, 문이 잠긴 커피숍 앞 공간에 자리를 깔고 다과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10분도 지나지 않은 때에 케이블카 사장이라는 사람과 직원들이 여러 명 몰려나와서 당장 자리를 옮기라고 하였다. 우리는 "커피숍에 가려고 하였으나 문이 잠겨 있어 이곳에서 잠시 바람을 피하기 위해 앉았다"면서 양해를 구하였으나, 무조건 안 된다고 당장 나가라고 하므로 우리는 상대의 처사가 너무 황당하여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이때 30, 40대로 보이는 상대 측 사람 한 명은 우리에게 심지어 욕설과 위협적인 몸짓까지 하였다.

우리는 매주 등산을 하는데 그 부근을 지날 때마다 그곳 커피숍을 자주 이용해 왔고, 케이블카도 올해뿐 아니라 여러 번 타면서 공원에서의 여유를 느껴 왔었다. 그러나 이번에 겪은 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인으로서 너무나 분하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여 지면으로나마 앞산공원을 대구시민들의 소중한 휴식처로 되돌려받고자 졸필이지만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앞산케이블카에서 우리 노인들이 당한 봉변에 대해 그간 두 차례에 걸쳐 민원을 제가한 바 있으나 흐지부지 용두사미 격으로 끝내 버리는 데 대해 우리 회원 모두가 안타까운 마음이다.

평범한 젊은이들의 눈에 노인은 본디부터 노인이었을 것 같고 나와는 상관없는 존재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젊었을 때 나와 무관하게 보이던 노인의 모습이 오늘날 나의 모습이라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에게 무조건 노인을 위해 양보해 달라는 말이 아니다. 노인으로서 특권을 누리고 싶은 호사는 전혀 없다. 그러나 신체 기능이 젊은이와 다른 노인들을 배려하고 과거에 겪은 수고를 이해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에 발생한 일화도 마찬가지다. 영업 중이지도 않은, 잠겨진 출입구 앞에서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잠시 모여 있는 노인들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행 모두가 점잖은 사람들이고 저명인사도 적잖이 있어 대보름 민속을 위해 소량의 귀밝이술을 준비했지만 절대로 그 자리에서 과람하게 술판을 벌일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면 떠날 사람들을 굳이 쫓아내는 것이 얼마나 야박한가. 이번 일을 계기로 늙어감에 대한 책망이 들기도 하지만 누구나가 이용하는 공원의 한 구성 요소로서 케이블카가 존재한다면 시민들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도 분명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앞산공원관리사무소는 시민들이 어떻게 공원을 이용하고 있는지 한 치의 소홀함이 없이 살피면서 시민들의 행락질서를 바로잡고, 현장민원을 돌보면서 혹시나 시민들이 위해를 당하는 일은 없는지 세심하게 파악해주기를 바란다. 그뿐만 아니라 공원에 입점한 업체들이 영업을 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도 관심있게 살펴보아야 한다. 앞산공원을 관리하는 대구시의 조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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