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제국'과 보통 국가를 구분하는 기준의 하나로 '중립의 불용(不容)'을 든다. 제국은 자기 영향권에 속한 중소 세력들에 중립적 태도를 취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들에게도 중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뮌클러는 제국은 자기의 영향권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계속 중립을 유지하면 불가피하게 제국적 지위를 잃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제국, 평천하의 논리')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온다. 바로 패권 세력 아테네의 영향권 내에 있던 멜로스를 아테네가 멸망시킨 사건이다. 당시 스파르타와 전쟁 중이었던 아테네는 멜로스에게 참전을 요구했지만 멜로스는 거부했다.
그 이유로 멜로스는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작은 섬에 지나지 않는 멜로스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 뛰어들어봤자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별 의미가 없다. 둘째 아테네가 멜로스의 중립을 존중한다면 아테네의 관대함은 모든 곳에서 칭송받을 것이다.
하지만 아테네는 전혀 달리 접근했다.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지 못하면 패권적 지위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멜로스에 양보하면 아테네의 영향권 내에 있는 다른 동맹국들도 멜로스처럼 '결정의 자유'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아테네의 권력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말을 듣지 않는 동맹국들과의 무수한 전쟁을 통해 아테네의 정치적 권위를 다시 세우는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는 제국의 행동 논리를 잘 설명해준다. 제국은 자초했든 아니든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을 때 자신에 대한 지지와 반대의 양자택일을 자기의 '세계'에 강요하며, 중립을 은밀한 적대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사소한 양보도 패권이 위협받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비이성적 보복도 이런 프레임을 통해서 보면 그 이유가 명쾌하게 드러난다. 중국은 우리를 자기의 속국임을 당연시하는 중화주의로 회귀하고 있으며, 사드 배치는 이를 거부하는 명백한 '탈(脫) 중화' 책동이란 것이다. 사드가 중국의 안보 위협이 아니라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맞서기 위한 '중립적' 방어 무기임에도 막무가내인 이유다. 그런 점에서 사드는 이제 전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 우리가 과거의 조공국으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공통분모로 한 '가치동맹'의 일원으로 남느냐를 가늠하는 상징이 됐다는 얘기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