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 산책] "태평성대는 언제쯤…정치인들 제발 부탁해"

소옹
소옹

머리에 꽃을 꽂고 소옹

머리 위 꽃가지가 술잔 속에 얼비치니 頭上花枝照酒卮(두상화지조주치)

술잔 속에 아리따운 꽃가지가 아른아른 酒卮中有好花枝(주치중유호화지)

이 몸은 한평생을 태평성대 누렸으며 身經兩世太平日(신경양세태평일)

눈으로는 네 임금의 전성기를 보았다네 眼見四朝全盛時(안견사조전성시)

하물며 몸은 아직 그런대로 건강하니 況復筋骸粗康健(황부근해조강건)

정말 향기로운 때를 어찌 그냥 보낼 건가 那堪時節正芳菲(나감시절정방비)

술 속에 꽃 그림자 붉은빛이 일렁대니 酒涵花影紅光溜(주함화영홍광류)

차마 어찌 꽃 앞에서 안 취하고 그냥 가랴 爭忍花前不醉歸(쟁인화전불취귀)

*원제: 揷花吟(삽화음)

여기 백발이 성성한 머리 위에다 꽃가지를 꽂은 늙은이가 있다. 그가 든 술잔에는 아리따운 꽃가지가 어른대고 있다. 늙은이는 한평생 태평성대를 누려왔으며, 네 임금의 전성시대를 직접 목격하며 살아왔다. 나이가 비록 많기는 하지만 아직 건강에도 별문제가 없다. 따라서 이토록 향기롭고 아름다운 시절을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으니, 술잔 속에 일렁대는 꽃을 마시며 실컷 취하여 돌아가야겠다.

위의 시를 지은 소옹(邵雍'1011~1077)은 북송(北宋) 시대의 저명한 철학자로서 병을 핑계로 벼슬을 사양하고 낙양에서 은둔했던 사람이다. 스스로 호를 '안락(安樂) 선생'이라 부른 데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삶은 대체로 큰 풍파 없이 안락하였다. 그러한 삶의 정서적 등가물(等價物)에 해당하는 위의 작품은 한마디로 말하여 팔자가 늘어진 시다. 물론 세상사에 초연한 채 자연에 묻혀 살았던 이의 시대현실에 대한 착시현상이 포함되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이와 같은 시가 나올 수 있는 시대를 산 작자는 행복했을 게다.

그런데 나는? 나는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무려 11명의 대통령을 겪어왔다. 하지만, 정말 아쉽게도 소옹이 말하는 태평성대나 전성시대라는 거룩한 용어에 상응하는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남북 분단 때문에 언제나 가슴 죄며 살아왔고, 독재와 민주,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금수저와 흙수저의 대립과 갈등으로 나라가 아슬아슬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대통령 탄핵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둘러싸고 '촛불' 부대와 '태극기' 부대가 어떤 상황을 연출할지 그야말로 걱정이 태산이다. 나라 전체가 폭풍우 속의 조그만 연잎 위에 가까스로 얹혀 있는 느낌이다.

변변치 못하지만,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정치인들에게 부탁 하나 하마. 정치인들이여, 이 땅의 늙은 시인들이 소옹과 같이 팔자가 늘어진 시를 쓰면서 아름다운 봄날을 보낼 수 있도록, 부디 정치 좀 제대로 해봐라. 제발 부탁한다, 정치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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