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말로(末路)

미국 역사상 가장 비이성적인 시기를 꼽으라면 '매카시즘' 광풍이 불던 1950년대다. '미국주의'로 포장된 이 정치 탄압은 1950년 2월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폭탄 발언에서 시작됐다. "국무부 내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폭로하자 미국은 '레드 스캐어'(공산주의자 공포)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당시 매카시 의원은 경력 위조에다 금품 수수, 명예 훼손 등 추문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의회에서 온갖 물의를 일으키며 4년을 무위도식해 '불한당' 오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이 빨갱이 소동으로 그는 뉴스의 중심에 섰다. 기고만장한 매카시의 혀는 거침이 없었다. 맥아더를 해임한 민주당의 트루먼 대통령을 겨냥해 "이 X자식은 탄핵을 당해야 한다"며 욕설까지 퍼부었다.

그는 반공(反共)을 절묘하게 정치 상품화해 영향력을 키웠다. 상원의원 재선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의 기만과 광기는 이내 누더기가 되고 만다. 205명의 공산당원 리스트는 57명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10명으로 줄고 결국엔 1명만 남았다. 이마저도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말 그대로 미친 헛소동이 된 것이다.

악의적인 왜곡과 날조, 선동은 결국 매카시의 무덤이 됐다. '반지성주의의 표본'이라는 당대의 평가는 그의 몰락이 얼마나 극적인 일인지를 말해준다. 매카시의 실체를 낱낱이 밝힌 CBS방송 에드워드 머로의 다큐멘터리로 큰 타격을 받은 그는 1954년 육군-매카시 청문회 때 여론이 등을 돌리면서 치명상을 입었다. 이후 그의 말로(末路)는 예견됐다. 술에 절어 살다가 48세라는 젊은 나이에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헌재가 재판관 전원 일치로 국회의 대통령 탄핵 소추를 인용하면서 파면됐다.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쓰고 4년 13일 만에 청와대를 떠나는 신세가 됐다. 국민이 헌법에 따라 부여한 대통령의 특권도 모두 사라졌다. 임기 내내 '불통'과 '배신'의 프레임으로 버티다 국민을 배신하고 비이성적, 반시대적 인물로 낙인된 결과다.

뒤틀린 이성과 상식에 어긋난 정치는 그 말로가 어떤지를 'TV 스타' 매카시와 '선거의 여왕' 박근혜 두 사람의 정치 행적이 고스란히 증언한다. 역사의 교훈은 따갑다. 그렇지만 그 따가움의 고통은 늘 너무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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