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일요일 잔치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는 방식이 보통 이상이면 그것은 잔치라고 일컬어진다. 잔치란 생일이나 혼사, 취임이나 승진을 환영하거나 축하하려고 음식을 마련해서 손님을 불러 여러 사람이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흥겹게 노는 일련의 과정을 가리킨다.

과거에 백일잔치는 대규모로 벌어졌다. 유아의 사망률이 높았던 옛날에는 백일이 어려운 고비를 넘긴 주술적 숫자관념과 연결돼 있었다. 탄생 일주년의 첫돌잔치는 아기를 위해서나 집안을 위해서나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집안에 혼사가 있으면 산 너머 사는 고모는 며칠 전부터 친정으로 와서 잔치 준비를 도왔던 시절이 있었다. 옆 동네로 시집간 작은고모는 메밀묵을 해 오기로 하였고, 강 건너 이모는 식혜를 맡았고, 찰떡을 잘 만드는 외숙모도 솜씨를 보여야 했다. 작은엄마는 몇 날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등 시댁이나 친정의 식구가 모두 잔치 준비를 하였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사라진 옛날이야기일 뿐, 예식장이나 호텔에서 기계처럼 준비된 뷔페 음식으로 손님을 접대한다. 잔칫날이지만 그 집안의 음식 가풍이나 새댁들의 음식 솜씨는 알 수가 없다.

청첩장을 받다 보면 일요일 정오 무렵의 결혼식이 제일 많다. 축의금만 전달할지 직접 찾아가서 축하해 줘야 할지 망설여질 때도 있다. 사회관계의 농도를 반영하는 듯한 고지서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혼주에게 반드시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할 날이면 일요일 하루는 통째로 날아가 버린다.

혼주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축의금을 전달한 직후에, 신랑 신부 얼굴도 볼 겨를 없이 비좁은 예식장 계단을 겨우 뚫고 식당에 들어선다. 은행 창구에 세금을 낸 후 받아 쥔 영수증처럼 식권을 제출하고 긴 줄을 선다. 축의금 일부는 혼주의 예식 비용으로 쓰이고 대부분 돈이 밥값으로 나가는 셈이다.

일요일 아침부터 정장 차림으로 외출 준비를 하고, 교통체증에 주차 전쟁을 치르고, 그다지 맛이 뛰어나지 않은 뷔페 점심을 먹고 나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일요일 정오에 잔치를 하게 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멀리서 오는 친척이나 하객을 위함이었던 것 같다. 경사스러운 날이라서 평소에 먹지 못하던 맛있고 귀한 음식을 마련해서 친지나 동네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즐겁게 지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결혼식을 일요일 정오에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교통이 편리해졌고 맛있고 귀한 음식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시대이다. 가까운 친지들만 초대하여 평일 저녁에 결혼식을 한다면 하객들도 퇴근하는 길에 들러서 축하해줄 수 있고 일요일 하루를 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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