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구병의 에세이 산책] 너나없이 살고 살리자

어느덧 한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고들빼기와 냉이를 캐는 철이다. 고들빼기와 냉이는 가을에 싹이 터서 납작 엎드려 추운 겨울을 난다. 찬바람은 쐬지 않고 햇볕은 듬뿍 받으려고 한껏 몸을 낮춘 그 모습에 삶의 슬기가 도드라짐을 느낀다. 깊이 뿌리를 내려 흙덩이를 단단히 붙들고 있다.

이 들나물들은 겨울을 나는 동안 푸성귀 맛에 굶주린 우리 변산 식구들에게 알맞춤한 반찬거리다. 알다시피 냉이나 고들빼기는 뿌리째 먹는다. 그래야 제맛이 난다. 냉이와 고들빼기는 된장이나 고추장에 버무리기도 하고 간장에 무쳐 먹기도 하는데 맛이 쌉싸름해서 입맛을 돋운다. 고들빼기는 '곰발'(종기)을 없애고 열을 내리는 약으로, 그리고 냉이는 위를 튼튼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는 약으로 쓰기도 한다.(눈이 침침해지는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냉이 반찬이 반갑다.)

'남자가 무슨 반찬 마련까지?' 여길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공동체에서는 가시버시(남녀) 가리지 않고 밥을 짓고 반찬을 장만한다. 처음부터 그랬다. 아이 낳고 젖 먹이는 일이야 여자만 할 수 있는 일인지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 밖의 일은 두루 맡아서 일손을 나누는 게 마땅하다는 뜻에서 그런다.

요즘 들어 많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아직도 집안일은 여자 몫, 바깥일은 남자 몫으로 치는 이들이 있다. 고쳐야 할 낡은 버릇이다. 남자 반 여자 반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들에서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반반씩 나누어야 한다.

어어, 이야기가 곁길로 새네. 이러려고 꺼낸 게 아닌데. 가르치려는 이 버릇 여태까지 못 버리고 있구나. 흙 지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쩝쩝.

수천수만 년을 두고 자연스럽게 쌓인 흙 한 줌(500g)에 오늘날 세계 인구(60억 명으로 치자)에 버금가는 생명체가 깃들어 있다고 한다. 쓸데없이 죽고 죽이고 뺏고 빼앗기는 일 없이 오순도순 어울려 사이좋게 살길을 찾았기 때문이리라고 본다. 그 '땅심'(흙의 힘)을 북돋는 데는 냉이나 고들빼기들도 거들었으리라. 저를 살리는 흙이 하릴없이 쓸려 내려가지 않게 그 여린 실뿌리들로 단단하게 움켜쥐고 있어서 저도 살고, 그 안에 사는 그 많은 목숨붙이들도 살 수 있게 했으리라.

요즘은 시골에 일손이 없어서(젊은 일손은 아예 눈 씻고 찾아도 없는 마을도 있다.) 논밭에 제초제, 농약 뿌리고, 트랙터로 드르륵드르륵 갈아엎어 땅을 벌거숭이로 만드는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그 사이 그 땅을 지켜온 그 많은 생명체들이 살 곳을 잃고 비바람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흙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메마른 아스팔트에서 서로 피를 부르는 대신에 너도나도 다시 시골로 돌아와 흙을 되살리고, 너나없이 살고 살릴 길 찾는 게 어떨까. 고들빼기 먹고 열 내리고, 냉이 먹고 눈 밝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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