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다 즉흥적으로 입양
中 왕실의 호위·투견 샤페이
특성 알아갈수록 매력 넘쳐
여수서 배편 이용해 여행 출발
주변 시선 호의적이지 않아
개인실하면 갈등 소지 줄어
'개 두 마리' 코너에서는 반려견을 키우는 강민호 기자의 일탈 생활을 들여다봅니다. 반려견 '쌤'과 함께 일상을 벗어나 경험하는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반려견과 가질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과 더욱 다양한 정보를 찾아 소개하겠습니다. '개 두 마리'는 한 달에 한 번 LIFE 면 애완동물 코너에 실립니다.
내가 키우는 샤페이 '쌤'과는 즉흥적인 여행을 자주 떠난다. 어찌 보면 쌤과는 첫 만남부터가 아주 즉흥적이었다. 어느 날 친구랑 술을 마시다 개를 키워보자 결심하고 밤새 애완동물 사이트를 뒤지다가 다음 날 쌤을 분양받았다. 우리 가족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특히 개를 무서워하는 엄니(지금은 쌤과 스킨십이 가장 많다)는 "저질렀다"는 표현까지 썼다. 서른이 넘은 노총각 아들이 차라리 다른 사고(?)를 쳤다면 며느리에 손주까지 '일타쌍피'라고 반겼을 테지만 쌤은 환영받을 만한 사고가 아니었다.
쌤과 한 달간 올레길 정복에 나선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라 반려견과 추억을 쌓고 싶었고, 또 하나는 제대로 단련시켜 좀 더 건강하게 키워보자는 생각에서다. 당시 쌤은 4개월 된 아기였다. 제주도가 따뜻하다고는 하지만 겨울이었기 때문에(실제 여행 중 제주도에 95년 만의 폭설이 내렸다) 동네 마실 나가듯 떠날 수 있는 여정은 아니었다.
1. 워밍업
좀 고리타분하지만 나는 이 녀석(여성입니다)에 대한 이론적인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샤페이 종(種)의 역사와 습성 그리고 전문가가 기술한 성격 같은 것들이었다. 인간들끼리도 함께 여행을 떠나면 트러블이 생기는데 개라고 다를까? 쌤 요것이 어떤 개인지 파악을 하고 떠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 멀미는 안 할지?' '100㎞ 이상 걸을 텐데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와 같은 일들이 걱정됐다. 다행히 쌤의 조상은 중국 모래사막에서 왕의 곁을 지키던 호위견 또는 투견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잘됐다. '니 조상은 왕을 모셨으니 너는 나를 잘 모셔라.' 모래사막에서 뛰어다녔으니 흙바닥 걷는 건 문제도 아닐 테지. 피지컬한 문제도 해결된 셈이다. 성격 또한 매우 묵직하고 온순하기 때문에 동행하기 괜찮은 파트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페이는 피부병이 자주 생긴다고 들었지만 이 또한 현지 동물병원에 가면 해결된다.
여행 전 일주일 간격을 두고 매일 10㎞씩 강도 높은 산책을 시작했다. 운동장을 뛰기도 하고 올레길 정복에 대비해 오르막 내리막 코스를 왕복했다.
2. 비용은 얼마나 들까?
나는 한 달 여행 경비로 140만원을 책정했다. 물론 뱃삯(25만원)~숙소(45만원)~식대(50만원)~주유비(20만원)를 모두 합한 금액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돌발 변수가 생겨 여정이 3주로 줄어들었고 숙박비를 절약하게 돼 총 92만원을 사용했다. 숙소는 반려견과 함께 잘 수 있는 낡은 독채(월 45만원)를 구했다. 나는 차에서 자도 상관없지만 혹시나 쌤이 차에서 얼어 죽는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았다. 그런데 쌤과 올레길을 정복할 거라고 유난을 떨었더니 제주도가 고향인 친구가 집을 공짜로 빌려줬다.
굳은 숙박비는 잘 먹고 다니는 데 사용했다. 집을 공짜로 쓰지 않았더라도 3주면 얼추 100만원 내외의 경비를 썼으리라 생각된다. '개와 떠나는 올레길 정복'은 육지 여행이 아니라 목적지가 바다 건너 제주도다. 반려견을 데리고 제주도까지 가려면 ①비행기를 타거나 ②배를 타고 가거나 ③차를 몰고 배(船)로 가는 방법이 있다. 한 달 렌트카 비용을 계산하니 ③번이 가장 저렴했다. 올레길을 걸으면 진흙이 묻어 반려견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 변수도 생긴다. 내 경우에는 여정 중 제주에 95년 만의 폭설이 내렸다. 쌤과 9코스를 걸을 땐 얼음물 웅덩이에 빠져 쌤과 급하게 온수가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이럴 때 차가 없었다면 지금쯤 나는 기사를 쓰는 대신 신문에 실린 사람일 수도 있겠다.
3. 개 데리고 배편으로 제주도 가기
대구에서 제주도까지 배편으로 가려면 넉넉잡아 9시간은 걸린다. 배에 떠 있는 5~6시간은 쉴 수 있지만 개를 데리고 장거리 운전하는 일은 매우 피로하다. 다행히 쌤은 역마살이 낀 나와 자주 장거리 주행을 다녀 문제가 없었다. 나는 동물이 시력 외에는 인간보다 모든 감각이 뛰어나고 예민하다고 생각한다. 내 차는 마이바흐가 아니다. 흔들리는 차에 반려견를 싣고 다니는 것도 못할 짓이라고 생각해 나는 경유지를 추가했다.
창원에 있는 친척집에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새벽에 여수로 가서 배를 탔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자정에 도착하고 다음 날 새벽 5시에 떠났는데 그 사이에 주차 경고장을 붙여 놨다. 나는 낙인을 지우는 일에 익숙하지 못해 제주도에서 3일 동안은 이 경고장을 차에 붙이고 다녔다. 다행히 제주도로 가는 배 안은 매우 쾌적했다. 다만 반려견에겐 호의적이지 않았다. 나랑 쌤이 못생긴 탓도 있었겠지만 눈총을 오만상 받았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참아 달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물론 소형견을 케이지에 넣어 다니거나 개인실을 예약해 그 안에만 있다면 갈등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 친절한 직원의 배려로 쌤과 나는 노래방 칸에 머물렀다. 근데 사용자가 없고 겨울이다 보니 노래방은 거의 냉동실 수준으로 추웠다. 나는 쌤을 부둥켜안고 쌤 담요를 덮고 누웠다. 정말이지 혹한기 훈련 때만큼 추웠던 것 같다. 쌤을 얼려 죽일 순 없으니 꼭 끌어안고 있었다. 얼마 후 1시간 뒤 제주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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