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는 미국인에게 큰 충격이었다. 당시 미국 시민 상당수가 정부 발표를 듣고도 사건의 실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 이런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는 강한 잠재의식 때문이다. 소위 '미국 예외주의'라는 과도한 믿음과 심리적 반발이 현실 부정의 기제로 작용한 것이다.
이런 심리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인지(認知) 부조화'라고 한다. 한 사람이 서로 상반되는 생각과 신념, 가치를 동시에 가지고 있거나 기존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느끼는 스트레스나 불편한 경험을 일컫는 용어다. 사회심리학자 리언 페스팅어가 1957년에 출판한 '인지 부조화 이론'에서 처음 제시했다.
페스팅어는 스탠퍼드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론을 검증했다. 실을 실패에 감는 지루한 단순 작업을 수행하는 실험이다. 실험 결과 자기 행동과 태도, 신념 등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사람은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데 이를 해소하거나 줄이기 위해 자신을 합리화하고 일관성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흡연자들이 금연에 실패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주위에 "담배 끊겠다고 마음먹었더니 되더라"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하지만 대다수 흡연자는 그렇지 못하고 실패한다. 이유는 개인마다 제각각이지만 흡연을 정당화하거나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핑곗거리를 찾으면서 금연에 무감각해지는 경우가 많다. 흡연을 정당화하는 심리가 금연의 필요성보다 우위에 놓이는 일종의 '자기기만'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저녁 사저로 돌아갔다. 보도에 '화장 얼룩이 묻어날 정도로 울었다'고 한다. 민경욱 전 대변인이 읽은 메시지에서 그의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파면'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나 그래도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불복 선언이다. 파면의 판단 근거가 무엇이든 대통령으로서 잘못한 것이 없다는 의미다. 작년 10월 25일 첫 대국민 '억지 사과' 이후 줄곧 펴온 "엮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전형적인 인지 부조화 현상이자 인지적 오류다.
최고 권력자의 파면은 법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면서 법치와 자유민주주의에 스스로 눈을 가린 결과다. 그토록 바라는 진실이 조만간 법정에서 밝혀지면 또 어떤 말을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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