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희구의 시로 읽는 경상도 사투리] 범물동凡勿洞

상희구(1942~ )

청도 이서伊西 쪽에서

팔조령 넘어온

새들이 잠시 놀다 가고

금호琴湖 대창大昌 쪽에서

건들바람이 불어와

건들건들 빈둥거리다 가고

청도 운문雲門 쪽에서

구름이 몰려와

그렁지만

맨들어놓고 가고

(「대구」 제1집, 시집 『大邱』 오성문화 2015)

*건들바람: 원래는 풍속의 세기를 가늠하는 등급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게으름 피우는 바람'이란 뜻으로 써본 말이다.

*그렁지: 그림자

대개 70~80년 전쯤, 대구 동남쪽에 위치한 수성동, 범어동, 황금동, 범물동, 지산동, 두산동 등은 닭 우는 소리에 새벽이 깨어나고 개 짖는 소리에 사립문이 닫히는 그야말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그림 같은 산촌(山村)이었다. 지금은 아파트촌과 빌딩숲을 이룬 첨단의 번화가가 되었는데 도시 개발 논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일 터이지만 대구 지방의 자연생태계 변화는 실로 엄청나서 두렵기까지 하다. 위의 시는 어느 날 범물동 빌딩숲 사이를 걷다가 갑자기 옛적 이곳의 그렇게도 목가적(牧歌的)이었던 전원 풍경이 생각나,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연상하며 절대전원(絶對田園)을 동경하여 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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