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식 통치 스타일
헌정 첫 대통령직 파면으로 이어져
'아버지의 이름으로' 미혹됐던 투표
우리도 뼈저린 반성문을 써야할 듯
박근혜(한국), 베나지르 부토(파키스탄),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필리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인도네시아). 한때 아시아를 대표하던 여성 정치 지도자들이다. 더 큰 공통점은 이들의 아버지가 하나같이 정치적으로 한 획을 그었던 전직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군사정변으로 집권했지만 '한강의 기적'으로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 분리 독립으로 혼돈에 빠진 조국을 수습했던 줄피카르 알리 부토, 2차 세계대전 중 반일운동 지원과 독립 뒤 필리핀 경제개발의 초석을 닦았던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독립 영웅으로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이 된 뒤 그 유명한 '반둥회의'를 통해 세계 비동맹운동을 이끌었던 수카르노.
그런데 이들 역시 서로 닮은 정치 인생을 살았다. 박정희는 총애하던 측근의 흉탄에 비극적으로 삶을 마쳤다. 줄피카르 알리 부토는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독재자의 손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은 재선 실패로 마르코스에게 21년간 장기 독재하는 단초를 열어줬다. 수카르노는 종신 대통령으로 추대됐지만 반공을 기치로 내건 군부에 의해 축출됐다.
국부에 추앙될 정도로, 권력의 정점에서 거짓말처럼 비참하게 끝나버린 정치와 인생. 하지만 이에 대한 동정과 안타까움은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을 자양분으로 어느새 정치신화가 되어버렸다. 자연스레 그들의 딸은 격변기 때 정치적 구세주로 호출돼 나왔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박근혜)이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IMF 외환위기 때였다. "1960, 70년대 국민이 피땀 흘려 일으킨 나라가 오늘 같은 난국에 처한 것을 보면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나 목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1997년 12월 한나라당 입당의 변이었다.
아버지 후광은 고비 때마다 빛을 발했다. 1998년 4월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 박근혜의 당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정치 경험도, 지역 연고도 전혀 없었다. 여기에다 야당 후보였다. 반면 상대 여당 후보는 달성군 태생으로 안기부 실세 출신이었다. 특히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박근혜의 압승이었다. "박정희냐, 김대중이냐?" 오로지 이 캠페인 하나가 승부를 갈랐다는 게 언론의 분석이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때도 아버지 파워는 강렬했다. '박정희 vs 노무현' 대리전 양상을 빚기도 했던 선거판. 아버지는 노무현을 너끈히 이겨줬다. SNS 조사 전문기관에 따르면 '박정희의 딸' 이미지에 63%가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반면 '노무현정부'에 대한 긍정은 10%에 그쳤다. 이는 득표로 이어졌다. 박근혜는 51.6% 득표율로, 47.9%의 문재인을 108만 표 차로 눌렀다. 50대(62.5%), 60대(72.3%)의 일방적인 지지 덕택이었다. 이들은 아버지가 대통령이던 시대를 살았던 세대로 유신의 아픈 기억보다 박정희의 개발 경제의 달콤한 과실을 더 주목한 결과였다. 여기서만 500만 표를 더 얻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딸의 대통령 역할까지 해줄 순 없었다. 오히려 박근혜에게 드리워진 아버지 시대의 패러다임은 정치적 멍에였다. 재벌을 겁박해 돈을 걷고, 대신 부정한 청탁 들어주기, 비판적 문화계 인사를 '블랙리스트'로 엮어 교묘히 탄압하기, 세간 여론엔 귀를 막은 채 소수 측근에 의지한 불통 리더십까지. 아버지의 복사판식 통치 스타일이었다. 결국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직 파면으로 이어졌다.
이제 우리도 뼈저린 반성문을 써야 한다. 실체를 따지기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선 후광에 미혹(迷惑)됐던 투표 행태 말이다. 아울러 정치현장에 소환된 박정희를 정말 역사 속으로 떠나보내야 한다. 21세기에 걸맞은 민주적 리더십은 시대착오와의 결별에서 시작돼야 한다. '아버지 이름' 정치에 기댔던 파키스탄, 필리핀, 인도네시아. 그들도 국가적 몸살을 앓았다. 그리고 깨끗이 이런 정치행태와 작별했다. 우리가 이들처럼 못 할 이유가 없다. '산업화와 민주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모범국가' 대한민국 국민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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