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이의 소망 가득한 창포말등대
망망대해 아름답게 펼쳐지는 축산항등대
아담한 팔각형의 흰색 등탑 후포등대
울릉도·독도와 가장 가까운 죽변등대
뱃사람을 뭍으로 안내하는 '4대 천왕'
어둠 속 등대. 빛의 '맥박'이 뛴다. 빛과 빛 사이 고유한 간격이 등대의 정체성이다. 간격이라는 질서로 밤바다에서 소통한다. 빛은 메아리가 없고, 수신자의 답신도 없다. 밤새 적막함 속에서 빛을 발신한다. 뭍의 높은 곳에서 맡은 일을 한다. 배는 그 빛을 받아 자신의 좌표를 확인하고, 다음 빛을 찾아 뱃머리를 돌린다. 적확한 빛의 소통이다. 육지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 그 경계에서 소통하는 등대가 보고 싶었다. 울진과 영덕으로 떠났다.
◆'빛의 파수꾼'을 찾아서
한 줄기 빛이었다. 흔들리는 빛이었다. 정확하게, 내가 탄 배가 흔들렸다. 2000년 부산 해양경찰에서 군 복무할 때였다. 경비정 선미에서 바라본 등대 불빛이 그랬다. 빛은 지휘하듯 움직이며,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였다. 보는 마음도 술렁였다. 바닷바람이 앞뒤 좌우에서 몸을 쳤다. 발이 자꾸 미끄러졌다. 뭍이 그리웠다. 불빛을 한참 쳐다봤다.
배에서 등대 불빛은 반갑다. 어둠 속에서 배의 위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고단한 항해에 정서적인 위로도 준다. 요즘 등대의 활용도는 과거보다 덜하다. 배에 위성항법장치(GPS)를 갖춘 전자레이더가 있어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역할이 있다. 풍랑이 일고 태풍이 오면 레이더만으로 부족하다. 전자장비는 고장이나 오류가 날 수도 있다. 특히 레이더가 변변찮은 소형 선박엔 오아시스와 같다. 등대는 빛으로 안내하는 바다 위 최후의 파수꾼이다.
그래서 안도현의 시를 이렇게 바꾸고 싶다. "등대 함부로 지나치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빛이 된 사람이었느냐."
경상북도 동해안의 등대는 모두 112곳(지난해 말 기준·사설 제외)이다. 항구의 방파제등대를 제외하면 16곳이다. 울진과 영덕에 각각 4곳과 2곳이 있다. 이 중 등탑과 등롱, 등명기 등 전형적인 모습을 갖춘 곳이 창포말·축산항·후포·죽변등대 등 4곳. 경북 동해안 북부지역의 '등대 4대 천왕'이다. 모두 산이나 가파른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다. 전망대로 활용되거나 공원과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여행 목적지로 부족함이 없다.
◆등대마다 빛나는 매력
7번 국도를 버렸다. 지방도로 달렸다. 지형에 맞춰 순하게 나 있는 길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꼬불꼬불 이어졌고, 버리는 풍경이 없었다. 등대에서 맛보는 즐거움 못지않게 가는 길에서도 눈이 호강을 누렸다.
도착한 곳은 창포말등대. 강구항에서 북쪽으로 9㎞로, 차량으로 20분이 걸렸다. 1984년 영덕읍 창포리 해안절벽 위에 세워졌다. 등탑을 휘감은 대게 앞발 모양의 청동색 장식물이 눈길을 끌었다. 빨간색의 동그란 등롱도 특색이었다. 등탑 내부 계단은 나선 모양이었고, 사람이 붐벼 교행이 버거웠다. 낙서판과 등탑 실내 흰 벽에 글자가 가득했다. 소감과 소망이 손으로 쓴 글씨에 담겼다. 등대는 무언가를 소망하게 하는 분위기를 풍긴다.
다음 도착한 곳은 축산항등대였다. 해발 80m의 죽도산 정상에 1935년에 세워졌다. 2011년에 과거 등대를 전망대가 있는 현재의 모습으로 바꿨다. 등대 높이는 23m로 7개 층이다. 전체면적 105.63㎡. 5층 전망대가 무척 넓었다. 계단은 물론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었다. 전망은 360도 가능했다. 어선으로 붐비는 축산항과 넘실대는 산맥이 보였다. 소가 누워있는 형세라 붙여진 축산(丑山)이란 이름처럼 항구 뒷산은 편안한 능선을 띠고 있었다. 각도를 바꾸니 해안선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위치에선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울진으로 이동했다. 어스름이 깔렸다. 멀리서 깜빡이는 빛이 보였다. 간격이 10초였다. 후포면의 후포등대임을 알았다. 64m의 등기산으로 올랐다. 예부터 깃발과 봉화로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하던 산이다. 팔각형의 흰색 등탑, 전체 높이 11m의 아담한 후포등대가 보였다. 1968년 1월에 점등한 뒤 쉬지 않고 빛을 내고 있다. 불빛은 35㎞까지 뻗는다. 백두대간의 낙동정맥 산줄기가 보이는 등 산과 바다의 풍경을 덤으로 즐길 수 있었다.
◆사람이 지키는 죽변등대
등대여행의 절정은 죽변등대였다. 울진·영덕에서 가장 오래됐다. 한일강제병탄이 이뤄진 1910년 11월 24일 첫 불을 밝혔다. 16m 높이의 흰색 팔각등대는 용의 꼬리 형상을 한 '곶'에 서 있다. 1950년 6·25전쟁 중에 폭격을 받아, 이듬해 복구할 때까지 기능을 못하기도 했다. 1970년에 소리신호기를 설치해 안개가 짙으면 소리(50초에 1회)로 신호를 보낸다. 등대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등대가 있는 죽변곶(竹邊串)은 울릉도와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원양어선의 길잡이가 된다. 해안을 따라온 배들이 죽변곶에서 동해 먼바다로 향한다. 37㎞까지 뻗는 등대 불빛(20초에 1섬광)이 끝나는 곳에서 30분만 더 가면 울릉도등대 불빛이 보인다. '빛의 징검다리'로 이어진 뱃길이다. 육지의 빛이 배를 놓아주면 섬의 빛이 배를 잡아주는 셈이다. 죽변등대에는 울진·영덕에서 유일하게 등대지기가 있다. 이들의 정식 직함은 항로표지원이다. 3명이 24시간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등대 옆에 사무실과 관사가 있다. 30년 경력의 장은석 항로표지원은 "죽변등대는 물론 울진에 있는 모든 등대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관리한다. 태풍과 같이 기상이 좋지 않은 날에는 선박 안전을 위해 비상근무를 한다"고 말했다.
장 항로표지원은 1998년 유인등대로 승격한 '독도등대'의 첫 근무자이기도 하다. "독도는 흙이 없는 바위섬이라서 오래 못 견딘다. 근무자들이 돌 위에 오래 있으면 몸이 붓기 때문"이라며 당시 근무의 어려움을 회상했다. 그는 정년퇴임을 몇 해 남겨두지 않았지만, 근무 주기에 따라 다시 섬으로 옮길 것이라고 했다. 섬으로 들어가야 다른 직원이 뭍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흥'은 재미와 즐거움의 감탄사입니다. 신나는 레저 지면을 만들겠다는 다짐이기도합니다. 주인공은 독자 여러분입니다. 지역의 역사문화와 자연, 사람을 소개합니다. 새로운 접근과 재발견을 통해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기사를 만들겠습니다. 오직, 독자의 흥을 돋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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