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볼테르와 졸라, 김평우

'볼테르'라는 필명을 가진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에밀 졸라, 장 콕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유명 문필가이자 사상가다. 남의 일에 적극 뛰어들어 참견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오지랖이 넓었지만 '톨레랑스'(관용)라는 미덕을 몸으로 부대끼며 지켜낸 이들이라는 점에서 분모가 같다.

이들은 장 칼라스 사건과 드레퓌스 사건, 장 주네 사건에 깊이 관여했다. 외면해도 무방한 성가신 일들이다. 그러나 대의(大義)를 위해 행동하는 지성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고 사회 인식의 흐름 또한 바꿨다.

1762년 툴루즈, 칼라스 사건은 당대 프랑스의 종교적 편견과 권위 의식, 낡은 체제를 허무는데 기여한 사건이다. 칼라스는 관대하고 덕망 높은 인사였다. 신교도인 아들이 종교를 이유로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사건의 발단이다. 자살자의 사지를 찢는 잔혹한 구교의 형벌을 차마 보지 못해 타살로 위장했다. 극성맞은 구교도들은 그를 직계비속 살인죄로 고발했고 종교적 편견에 사로잡힌 재판관들은 사형을 결정한다.

볼테르가 나섰다. 재심을 요구하며 그를 변호했다. 상고 끝에 3년 후 볼테르가 승소해 칼라스는 풀려난다. 볼테르의 행동은 인간 자유와 존엄을 억압해온 체제에의 반기이자 야만적 형벌제도가 타당한지 사회적 성찰을 불러일으켰다. 볼테르가 쓴 '관용론'의 토대가 된 사건이다.

드레퓌스 사건도 비슷하다. 졸라가 개입했다. 독일에 기밀정보를 팔아넘겼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은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 사건을 공론화하고 투쟁했다. 1898년 대통령에게 재심을 청원하는 공개편지도 보냈다.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라는 편지다. 드레퓌스는 풀려났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장 콕도는 사소한 도벽으로 종신형 위기에 놓인 극작가 장 주네를 위해 탄원서를 냈다. 무죄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재능을 아껴 "랭보와 같은 보물을 벌하는 것은 가혹하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주네는 면죄됐다.

탄핵 심판에 적극 뛰어든 김평우 변호사의 행동도 넓게 보면 이들과 같다. '탄핵을 탄핵한다'는 책과 신문 광고까지 내며 부당성을 주장했다. 막말도 했고 반 탄핵 연단에도 섰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외면받았다. 김평우식 정의와 법 논리가 길을 잃었거나 탄핵을 원하는 국민감정과 헌재 결정이 비이성적이었든지 둘 중 하나다. 자연인 박근혜가 21일 검찰에 소환돼 포토라인에 선다는 사실에 답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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