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가 좋다/이재태 지음/학이사 펴냄
종과 종소리에 담긴 내력과 사연을 문화 인류학, 세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이다. 종의 재료에는 유리, 나무, 흙, 은, 상아, 자기, 주석, 황동 등이 있고, 그중 특정한 소재로 종을 만든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이란 것은 거대한 역사나 종교일 수도 있고, 신화나 문학 혹은 전략적 목적일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종이 내포하고 있는 이야기를 찾아가노라면, 숱한 세대, 숱한 지역, 숱한 문화를 접하게 된다.
종소리에는 저마다 목적이 있다. 시작과 끝을 알리기 위해 울리는 종, 간절한 소망을 담아 울리는 종. 슬픔과 기쁨을 담은 종소리도 있다.
고대 사람들은 신들과 소통하기 위해 혹은 이승을 떠나 영혼이 된 조상이나 초자연의 말씀을 듣기 위해 종을 울렸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간의 소통을 위해 종을 친 사람들도 많다. 이 책은 전 세계의 종과 종소리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와 사연을 풀어내고 있다.
◆인류와 함께 생활하고 발전해온 종
고대 중국이나 서양의 기록에도 종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우리가 잘 아는 통일신라시대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전설만 보더라도 종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소망이 담겨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에밀레종은 '아이를 넣어 만들었다'는 전설 외에 종 표면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무릇 지극한 진리는 형상 밖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지라, 보아도 능히 그 근원을 보기 어렵고, 진리의 소리는 천지에 진동하니 들으려 하여도 듣기 어렵다. 이에 신종을 높이 달아 진리의 소리를 깨닫게 하노라.'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아 아이를 녹여 넣었다는 전설은 어떤 사연을 은유하는 것일까? 종의 표면에 적힌 '진리의 소리를 깨닫게 하노라'는 또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종을 수집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종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일본에서는 무서운 요괴 '오니'(鬼)를 막기 위해 외출할 때 '사루'(원숭이)라는 말을 외쳐 오니가 집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원숭이가 오니의 침입을 막아준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원숭이를 형상화한 종을 만들기도 했다.
◆전쟁과 평화, 승리와 재건의 상징
종과 종소리는 전쟁과 평화를 상징하거나, 전쟁이 났음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다.
중세 이후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교회당의 종은 큰 피해를 입었다. 전승국은 패전한 나라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종탑을 부수고, 큰 종을 떼어 자신들의 나라로 가지고 갔다. 또한 노획한 적군의 무기와 대포를 녹여 종을 만들고 승리를 자축하기도 했다. 18세기 영국은 미얀마 전쟁에서 승리한 후 양곤의 가장 유명한 불교사원의 종탑에 설치된 큰 종들을 전리품으로 가져갔고, 지금은 북 웨일스 카나폰 시내와 군사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종을 전쟁물자로 대거 공출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오스트리아에서는 성당과 교회당 종들이 몰수됐고, 독일에서도 청동 종을 떼어 총탄이나 대포를 제작했다. 이런 현상은 러시아, 폴란드,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종을 떼어내 무기를 만들었다.
전쟁이 끝나면 양상은 달라졌다. 전쟁이 끝난 뒤 각국은 전몰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앞 다투어 종을 만들었다. 이탈리아 로베레토 평화의 종은 제1차 세계대전 중 희생된 이탈리아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1924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19개국의 대포와 포탄을 모아 주조한 것이다. 이 종은 슬픔에 잠긴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는 'Maria Dolens 종'이라고 불리며, 지금도 전쟁 희생자와 참전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매일 저녁 수백 번 종을 친다.
전쟁을 일으켰으나 패전한 일본 역시 자신들이 전쟁광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평화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전후에 많은 종각을 세웠다.
◆"종을 통해 소통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책 '종소리가 좋다'는 종을 통해 세계 각국의 문화와 역사, 사람살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소통을 역설한다.
지은이는 "종이 인류의 역사와 사람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은 미신이나 종교 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고대 중국과 잉카 문명에서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종을 울렸다고 전해진다. 기독교에서 종소리는 천국과 하느님의 목소리를 상징한다. 종이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었던 것이다. 종소리는 종교의식에서 죄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무녀의 청동방울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산사의 범종은 성과 속을 이어주었고, 워낭 소리는 동물과 사람을 이어주었다. 종의 본질은 사람과 대상을 이어주는 것이다"고 말한다. 종은 곧 교감이자 소통이라는 말이다.
◆"오타쿠는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
지은이 이재태 대구경북첨단의료진흥재단 이사장은 의사이자 핵의학 전공 학자다. 첨단 의과학과 씨름하면서 25년 동안 종에 천착했다.
그는 "무엇인가를 수집한다는 것은 그 물건에 혼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종에 다시 혼을 불어넣어 준다는 것, 종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출생 비밀을 찾는 일은 기쁜 일이었다. 내가 만난 종을 만들었던 장인들이 쏟아부었던 열정을 나의 글로 세상에 알릴 수 있다는 것도 큰 보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어 '오타쿠'(御宅)는 '이상한 것에 몰두하거나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사람들은 흔히 오타쿠는 자신만의 문화에 몰두해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예 무시하고, 혼자만의 기준으로 자신만의 세상에 깊게 몰두해 돈과 시간, 정열을 낭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실 '오타쿠'들은 그들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마니아와 오타쿠의 삶을 존경한다. 그들은 즐겁게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 책 '종소리가 좋다'는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종소리, 세상을 울리다 ▷2부 종소리, 세상을 밝히다 ▷3부 종소리, 세상을 깨우다 ▷4부 종소리, 세상을 바꾸다로 종의 다양한 역할과 기능, 유래를 서술하고 있다. 종의 모양과 특징뿐만 아니라 종에 얽힌 시대 배경 등을 함께 서술하고 있다. 특히 종이 인류의 생활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352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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