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니어 기자단] 갈필 서예가 금석일 씨

'眞光不輝…굽은 갈필로 그려내는 바른 글씨는 마음

금석일 씨가 칡뿌리로 만든 붓으로 달필을 뽐내고 있다.
금석일 씨가 칡뿌리로 만든 붓으로 달필을 뽐내고 있다.
방종현 시니어 기자
방종현 시니어 기자

'시니어 세상'에서는 대구노인복지관협회 시니어 기자단이 전하는 어르신들의 소식을 나눕니다. 시니어 기자들의 밀착취재를 통한 대구 어르신들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봅니다.

대구노인종합복지관 서예실 문을 열자 묵향이 확 풍겨온다. 실내에는 50여 명이 제각기 서예에 몰입해있다. 서예실 가장 안쪽에 특이한 붓을 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갈필(葛筆) 서예가 금석일(85) 씨다. 책상 위에는 칡뿌리로 만든 갈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붓의 움직임은 춤추듯 거침이 없다. '眞光不輝'(진광불휘)란 '참 빛은 있어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라 한다. 글의 숨은 뜻은 군자는 큰 덕을 갖추고 있다 해도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도 않으며 그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숨김 속에서도 아름다운 빛이 난다는 뜻이다.

금 씨의 갈필은 일반 붓과는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일반 붓은 대나무 대롱에 양모가 가지런하게 박혀 있는데 예의 갈필은 칡 대롱에서 붓이 바로 연결되어 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갈필을 제작하게 됐다.

봉화에 있는 조부 산소에 벌초하러 갔다가 우거진 칡넝쿨을 다 걷어냈지만 처리할 방법이 마땅찮았다. 단단한 칡뿌리로 붓을 만들어 글을 써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곧은 대나무 대롱으로도 글을 쓸 수 있지만 다양한 형태의 칡뿌리로 달필이 가능하다면 그 또한 수련의 과정이라 생각했다.

금 씨는 갈필로 퇴계 선생의 시를 출품해 한석봉 상을 받았다. 그는 "조부님께서 갈필을 쓰라고 길을 이끌어 주신 것 같다"며 "칡뿌리 붓을 볼 때마다 조부께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특이한 모양만큼이나 갈필을 만드는 방법은 적지 않은 수고를 필요로 한다. 먼저 칡뿌리를 붓 크기로 잘라서 두세 달 정도 말려둔다. 이를 나무받침대에 올리고 고무 방망이로 두드리며 붓 모양을 만든다. 형태가 만들어지면 식초를 붓고 삶는다. 다시 고무 방망이로 두드리며 붓끝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글씨를 쓸 수 있는 갈필로 탄생된다.

금 씨는 훌륭한 갈필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칡뿌리 찾기 여행을 떠난다.

그는 "해풍을 맞으며 섬에서 자란 칡이라야 털이 잘 빠지지 않고 붓이 단단해 오래 쓸 수 있다"고 했다. 명필을 구하기 위해 무인도에 갔다 길을 잃어 혼이 난 적도 있다. 금 씨는 현재 100여 자루의 갈필을 가지고 있다.

금 씨는 전국 서화 예술협회 서예대전에서 수차례 입상하고 서예협회 운영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올해 85세인 그는 서예와 인생 모두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맞이해야만 정도를 걸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가 굽어진 갈필로 바른 글씨를 그려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의 인생도 굴곡이 있지만 초연한 마음가짐으로 맞이한다면 아름답게 그릴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방종현 시니어 기자

약력: 대구문인협회 특별위원

포부: 인생 2모작을 살면서 느낀 점과 사회의 귀감이 되는 부분을 찾아 알리겠습니다.

다루고 싶은 소재: 70, 80대의 할머니 여고시절 단짝 또는 소그룹 친구 사진 발굴, 실버 재능나눔 봉사단 소개.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