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좋은 게 좋은 것의 철학' 신봉자다. 내 결혼식을 앞두고 상견례 자리에서도 아버지는 '좋은 게 좋은 것'이니 서로 예단은 최소화하자고 하셨다. 무엇이 좋은 게 좋은 것일까? 좋은 게 좋은 것이 되긴커녕 나는 아내와 그날 이후 예단 문제로 결혼식 당일까지 싸워야 했다. 아버지와 아내가 생각하는 '좋음'이 서로 달랐다. 아버지의 '좋음'이 시아버지로서 최소한의 대접이었다면, 내 아내에게 '좋음'은 결혼 비용의 합리적 지출이었다. 아내도 시아버지의 '좋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의 철학'으로 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에 놓인 엄존하는 권력관계까지 넘어설 순 없었다. 아버지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모호한 클리셰로 가부장적 권위를 지키려 하셨고, 결국 아내도 아버지의 '좋음'을 따랐다. 화가 난 아내에게 말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만 화 풀라고. 어쩌면 이 말도 아내에게는 아버지의 '좋음'을 따르라는 은밀한 강요로 들렸을 것이다.
유력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이 '선한 의지의 철학'을 설파하는 것을 보며 아버지의 좋은 게 좋은 것의 철학을 떠올렸다. 무엇이 선함이고, 무엇이 선의인가? 선함이나 선의뿐 아니라 통합, 용서, 관용 같은 말들 모두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그러니까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처럼 내가 어떤 권력관계 속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말이라 한마디로 규정되지 않는다. 개념은 전쟁터라 강자가 생각하는 선과 약자가 생각하는 선이 같을 수 없는 법이다. 선한 의지의 철학에서의 선함은 강자의 선함일까, 약자의 선함일까? 결국 좋은 게 좋은 것의 철학처럼 이 역시 생각의 차이와 갈등을 적당히 덮고, 강자의 이해만 강요하고, 오해만 키울 공산이 크다.
'선한 의지의 철학'을 따라 그는 "20세기의 지성이 비판, 분석, 의심의 지성이라면 21세기의 지성은 통섭의 지성"이라는 말도 했다. 20세기 지성이 전체주의적 광기와 종교적 독단, 이데올로기의 폭력과 싸우는 과정에서 비판과 의심을 발전시켜왔다는 사실을 그가 잠시 잊은 건 아닐까? 반대로 에드워드 윌슨이 쓰는 통섭 개념은 실상 자연과학으로 학문 세계 전체를 통합하려는 생물학적 제국주의 발상이라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까? 힘센 학문은 통섭을 주장하고, 힘센 사람은 선의를 쉽게 운운하지만, 힘없는 사람은 선함을, 통합을, 용서를 결코 쉽게 말하지 않는 법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선한 의지를 지닌 존재로 보겠다는 발언의 선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하디 선한 발언이 선하게 보이지 않는다. 경상도 보수 아버지를 지지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모호한 말은 언제나 갈등도 불러온다. 좋은 게 좋은 건가? 아니, 나쁜 것일 때도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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