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고학 발굴 현장이나 박물관 전시실에서 흔히 듣는 얘기가 있다. '이런 쪼가리도 유물입니까?' '부서진 작은 조각인데, 유물이 맞긴 맞습니까?' 애당초 발굴 현장에서는 원래 그대로의 모습보다 부서진 채로 출토되는 것이 당연함에도, 쪼가리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실제, 이런 쪼가리들은 원래 형태를 추정할 수 없거나, 무엇에 쓰던 것인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하지만 그 쪼가리 속에는 고고학적인 정보와 깊은 역사가 담겨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되는 돌 부스러기는 구석기인들이 유적 내에서 석기를 만든 증거이다. 동물 유체 쪼가리는 그들이 무엇을 먹었고, 동물 종류는 당시 기후가 어떠했는지를 밝힐 수 있다. 신라와 고려시대의 기와 쪼가리는 초가집이 아닌 기와집을 지었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된다. 금속 쪼가리는 그 성분을 분석하면 고대 금속공예품에 사용된 금속 종류 및 합금 비율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쪼가리는 역사의 한순간을 담고 있는 소중한 기록 덩어리이다.
특히 신석기시대부터 만들어지는 토기의 형태와 질은 제작 당시의 특징을 잘 반영한다. 토기 쪼가리는 문양도 다채롭고, 굽는 방법에 대한 가마 사용방식을 유추할 수 있다. 도자기는 전문가에 따르면 100점을 구워 10점 정도만 건져도 성공이라고 한다. 토기를 구워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아마도 20% 내외일 것이다. 그 외 80~90%는 모두가 실패품이다. 하지만, 고고학자나 미술사학자의 안목으로는 깨진 토기나 도자기가 1천℃가 넘는 불가마 속에 넣어져 제대로 구워지지 않았더라도 실패품으로만 보지 않는다. 비록 도공은 마음에 들지 않아 버렸을지라도 토기나 도자기 쪼가리는 당시에 유행했던 형태나 문양, 제작기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국립대구박물관에서 개최하고 있는 '마침내 찾은 유적, 고대 마을 시지' 특별전(8월 6일까지)은 1992년부터 최근까지 발굴조사된 성과를 전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된 유적 수만 하더라도 55개나 된다. 삼국시대가 중심이 되는 분묘 2천913기, 주거지 등 생활유구 1천137기, 토기가마 등 생산유구 47기, 제사유구 44기 등 헤아리기 힘든 옛 사람들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여기서 출토된 국가귀속문화재가 무려 4만362점에 이른다. 특히 삼국시대 욱수동'옥산동 토기가마는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드문 토기생산 관련 자료이다.
시지 특별전은 토기와 철기, 기와, 청동 숟가락, 청자와 백자 등 그중 1만여 점을 간추려 수장고 보관형 방식으로 전시했다. 이런 전시품들은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서민들의 생활과 죽음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대구 시지유적이 경산 임당유적에 가려져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시지지역은 3천여 기에 달하는 삼국시대의 무덤 숫자에 비해 칼, 화살촉, 갑옷 등과 같은 무기류의 수량이 아주 적다. 이는 마을 사람들이 비교적 평화롭게 살았고, 이들이 전쟁의 중심 역할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었기 때문일 걸로 생각된다.
시지 생활유적들은 압독국 중심세력이 형성했던 임당유적의 화려함과 위세에 가려져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고고학 조사에서 주목받아온 것은 왕과 귀족, 지배자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이다. 껴묻거리로 나온 금공예품, 전쟁과 관련한 위세 등등한 무기류, 최상급 토기들이나 진귀한 교역품이 그러하다. 신라시대의 경주 황남대총, 천마총 등에서 발견되는 금관과 같은 화려한 껴묻거리는 시지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일반 서민들은 이런 물건들을 사용하지 못했고, 일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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