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4>-엄창석

바람이 불었고 달은 이울어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성벽 위 요철(凹凸) 모양의 여첩은 죄다 제거되었다. 5미터의 성벽이 절반쯤 깎여 북문 밖에 있는 일본식 여관의 바라크지붕과 높이가 비슷할 정도로 낮아졌다. 인부들이 돌을 무너뜨리고 흙을 파면서 계속 서쪽으로 나아갔다.

대구를 감싼 성은 전체적으로 방패 모양을 띠고 있다. 정문이 있는 남쪽이 방패의 하단처럼 둥근 형태이고 다른 삼 면은 직선이다. 각 면마다 대문이 있고 모서리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망루가 간소한 정자 모양이지만 높이 치솟아 있었다. 우리가 이날 밤 허무는 부분은 북문 양쪽, 그러니까 직선으로 뻗은 북면이었다. 길이는 8여백미터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계승은 북문에서 200미터쯤 서쪽에서 돌을 파내다가 성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언제 저렇게 모였던지, 사람들이 성 아래로 난 길과 집 사이의 골목마다 가득 차 있었다. 어둠 속이라 분간이 어려웠지만 수백 명은 돼보였다. 계승이 아래를 가리키자 마종수가 삽으로 턱을 괴고는 "저들 중에 누군가가 청부한 사람을 살해했겠네." 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관찰사가 일을 맡긴 사람이 등에 칼을 맞았다는 얘기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마종수의 말이 맞을 것이다. 범인이 저들 속에 있겠지. 그러나 거리가 멀어서겠지만 골목 사람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성 위를 지켜보기만 했다. 성 위에는 작업을 돕느라 횃불이 대낮처럼 밝혀져 있었는데, 불빛이 닿으면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아놓은 백석(白石)처럼 허옇게 보였다. 성 위는 부산했지만 성 아래는 이상한 고요가 흘렀다. 벼랑에서 돌이 떨어지면서 쿵, 쿵, 바닥이 진동할 때마다 골목도 흔들렸다. 일본 헌병들이 탄 말이 가벼운 구보를 하며 그들 앞을 지나가고, 다시 돌아오고는 했다.

조금 전 자정 무렵이었다.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성 안쪽에서 허물어진 흙더미를 밟으며 성 위로 올라왔다. 그는 헤쳐지거나 더미로 쌓인 흙 위로 말발굽을 찍으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일본 헌병대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비켜라 비켜라", 소리치는 경필(警蹕)을 앞세우고 말을 몰았기 때문에 그가 경상도의 우두머니인 관찰사라는 것을 알았다. 일인들이 야마모토라 부르는 박중양이었다. 횃불을 든 한인 노비(누구의 노비인지 모른다)들이 우르르 머리를 조아렸다. 일인 노무자들은 일손을 멈추고 길을 비켰다. 박중양은 가끔씩 늠름하게 말을 세우고 "모두가 한 백성이야. 아래 초가에 돌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소리를 질렀다. 우리말이 아니라 왜어로 말했다. 일인 노무자가 대다수니까 왜어로 한 건 당연했다. 그런데, 조심하라는 건 부민에 대한 애정 때문인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박중양은 계승의 앞을 지나 서쪽 망루까지 가면서 "민나가 히도쯔노 타미다!"(모두가 한 백성이야)를 소리 높였다. 성 아래에 붙은 집이란 고작 두더지 같은 초가였다. 노비들이 사는 움막이었다. 노비들이 거처를 옮기는 게 성을 허는 어려움보다는 쉽지 않을까. 그러나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박중양은 두루마기를 걸치지 않고 검은 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는 말에서 내려 미리 와 있던 이토와 나카에에게 한참 뭐라 쑥덕이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이토와 나카에는 현장에 남았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성돌은 계속 허물어졌다. 일꾼들은 성 아래에 모인 군중에게 더 이상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 이미 사람들도 많이 줄었다. 어떤 골목은 텅 비기까지 했다. 서너 명이 조를 이루어 돌 틈에 징을 박고 지렛대를 꽂았다. 돌이 빠지면 다른 조들이 달려들어 괭이로 흙을 팠고, 또 다른 조들이 어깨에 목도를 해서 흙을 날랐다. 민가를 피해서 떨어뜨리려고 토석을 목도로 나르는 것이다. 그 바람에 일이 제법 더뎌졌다.

그렇지만 일꾼들은 필요에 따라 한 조가 세 명이 되기도 하고 다섯으로 변하기도 하면서 능숙하게 작업을 해나갔다. 초량 바다 매립노역장에서 함께 일했기 때문에 손발이 척척 맞는지 모른다. 몸으로 하는 일이란 그렇다. 어느 때가 되면 한인인지 일인조차 구별되지 않는다. 평소의 차별도 지워진다. 물이 물에 섞이듯이 같은 노무자들이 되는 것이다.

서쪽 끝, 망경루가 지척일 때였다. 여첩은 무너뜨렸지만 여첩을 받치고 있던 성돌이 꿈쩍하지 않았다. 어찌된 건지 몇 군데에 지렛대를 꽂아도 요지부동이었다. 누군가 소를 구해와 끌어당겨보자고 했지만 소를 가진 일본 거류민들은 없을 것이다. 부민들도 소를 선선히 내줄 리가 없었다. 철도부설 때 소를 빌려간 일인들이 일을 마치고 소를 잡아먹어버린 걸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감영 뒤에는 감영 진위대의 화약창고가 있었다. 야밤에 성을 철거하는데 화약창고를 지키는 한인 병사가 열쇠를 내어줄까. 나카에와 우치타와 몇몇 일인들이 모여 그런 궁리를 했다.

계승은 저들이 주고받는 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어느새 허물어진 성 아래로 내려가는 일군의 인부들 속에 끼어 있었다. 망경루 옆의 성 높이는 여전히 4미터였다. 여첩만 뜯긴 상태였다. 까마득히 높은 성 위에서 긴 밧줄이 떨어졌다. 사십여 명이 대오를 갖추고 밧줄을 잡았다. 성 밑에서 열 걸음 정도부터 길게 늘어섰다. 줄을 잡은 맨 뒤쪽은 일인 철물점 마당까지 들어갔다.

성 위에서 횃불로 신호를 보내자 높이 4미터에서 성돌을 껴안은 밧줄이 아래로 팽팽히 당겨졌다. 두 가닥 굵은 밧줄이 횃불 빛을 받아 캄캄한 허공에서 하얗게 그어졌다. 다시 성 위에서 횃불이 깃발처럼 움직였다. 치이영. 치이영. 힘을 쓰는 소리가 성에 부딪쳐 메아리쳤다. 돌 틈에서 새들이 빠져나와 날아올랐다. 불빛에 얽힌 흰 점들이 허공으로 흩날렸다. 가운데서 밧줄을 잡은 계승의 손바닥이 찢어지는 듯 쓰라렸다.

선조임금 때 왜(倭)를 물리치려고 세웠고, 300년을 내려오는 동안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된 성돌이 끄떡끄떡 몸을 틀자, 그 느낌이 팽팽한 줄을 타고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이영차, 이영차, 이영차……. 거대한 성돌이 요동하면서 바로 옆 하늘로 솟아 있는 망경루가 앞으로 곧 넘어질 듯이 휘청거렸다.

동쪽 하늘이 조금 희붐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