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사할린의 주도(州都) 유즈노사할린스크 한 호텔에서 '민족통일대구시청년협의회'(이하 청년협의회) 주최 '대구의 밤' 행사가 열렸다. 10여 년간 러시아 한인 동포들과 끈끈한 민족의 정을 나눠온 대구 청년들이 올해도 사할린을 찾은 것이다. 올해 11회째인 이날 행사에는 임종환 사할린한인협회장을 비롯한 한인 동포 2세대 150여 명이 참석했다.
사할린에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됐다가 광복 후에도 떠나지 못한 한인과 그 후손 2만5천여 명이 살고 있다. 해방 즈음 사할린에서 태어난 동포들은 여전히 뿌리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하며 대구 청년들을 반겼다. 자신을 '의성 김씨'라고 소개한 김종길(67) 씨는 "아버지 고향이 대구였다"며 "이렇게 오랜 세월 사할린을 찾아오는 이들은 대구 사람들이 유일하다. 대구의 끈끈한 정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오게 된 1세대 한인 중 70%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출신이었다. 이들은 1958년쯤 소련 정부가 소련이나 북한 국적 취득의 길을 열어주었음에도 언젠가 고향으로 갈 날을 기다리며 끝내 무국적자로 남았다. 대구시와 청년협의회는 이런 1세대의 뜻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사할린을 찾고 있다.
옛 소련 땅에서, 한반도에서 태어난 부모의 가르침 속에서 자란 한인 동포들은 양국 문화가 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동포들은 가수 박상철이 부른 '황진이' 등 익숙한 트로트 무대를 선보이다가도 옆 사람과는 러시아말로 수다를 떨며 즐거워했다. 행사 진행을 맡은 김선경 전 사할린한인협회장은 "러시아에는 노래방이 많지 않아 늘 아쉬웠는데 최근 한인노인회관에 노래방기계를 설치하면서 노래 실력이 부쩍 늘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한인 2세대들이 부른 노래 중에는 유난히 아픈 사연을 지닌 노래가 많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무대에 오른 임옥순(81) 씨는 "부모님이 자주 불렀던 노래"라며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을 불렀다. 1983년 방영된 KBS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의 주제가로 널리 알려진 곡이다.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을 흥얼거리던 유동식(81) 씨는 "하루 12시간을 탄광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탁배기 한잔 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셨다. 10살 때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청년협의회와 대구시는 지난해부터는 대구에서 '사할린의 밤' 행사를 마련하고 교류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하태균 청년협의회 회장은 "현재 한국에 약 4천여 명의 사할린 출신 한인이 영주귀국해 살고 있다"며 "한 분도 빠짐없이 대구로 모셔와 사할린의 밤 행사를 함께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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