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꿈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

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 7일간 광활한 '설국 여행'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시발지인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는 금각교. 러시아를 상징하는 전통인형 마뜨료시카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시발지인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는 금각교. 러시아를 상징하는 전통인형 마뜨료시카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안용모(사진 왼쪽) 경일대 석좌교수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꿈의 여행'으로 불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많은 사람이 생애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여행으로 손꼽습니다. 대구시 도시철도건설본부장으로 국내 첫 모노레일인 대구도시철도 3호선을 건설한 안 교수는 '하늘 열차의 아빠'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 열차의 아빠'가 달려본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어떤 모습일까. 6회에 걸쳐 지면에 소개합니다.

"시베리아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겨울에 보아야 합니다. 영하 20~40℃를 오르내리는 혹한의 시베리아를 만나지 않고서 러시아를 봤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20여 년 전 여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러시아 유학생이 한 말이 가슴 깊숙한 곳에 박혀 있었나 보다.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꿈의 여행'으로 불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혼자 여행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여행으로 손꼽는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잇는 동서 횡단 철도로 총길이가 9천288㎞(지구 둘레 약 4분의 1)로 세계에서 가장 긴 연속 철도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시차가 7시간으로 시계를 몇 번 조정해야 하는 특별한 경험이 가능한 곳이다.

◆디지털시대의 아날로그 여행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시베리아 설원을 달리면서 여태껏 살아온 인생을, 살아가는 현재의 삶을, 그리고 앞으로 찾아올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인생의 축소판을 찾기로 했다. 개인마다 여행에 대한 가치관과 방식은 다르겠지만 나에게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은 친숙한 것들과 멀어지고 파란 눈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거대한 나라 러시아를 횡단하는 동안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러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겨울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다른 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압도적인 설원 풍경과 러시아 문화와 삶의 속살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손꼽힌다.

시베리아, 그 이름만으로도 동토의 척박한 땅, 유배지, 혹독한 기후 등이 충분히 연상되는 곳이다. 감성이 풍부한 낭만적인 사람이라면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라라의 테마로 친숙한 영화 '닥터 지바고'를 떠올릴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은 디지털시대의 아날로그 체험이고,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과는 다른 시간의 원칙이 작용된다. 우선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함을 체험한다. 러시아는 미국과 중국을 합친 것보다 크고 남북한을 합한 넓이의 100배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두 개의 대륙에 걸친 러시아를 온몸으로 헤쳐 나가다 보면 공간의 드넓음이 뼈에 사무쳐온다. 이틀을 꼬박 여행해도 오막살이 집 한 채 볼 수 없는 대지의 막막함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시베리아에는 겨울과 여름, 우리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극한의 기후 속에 원시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과 친구가 되어 때로는 신나게 때로는 고독을 즐길 수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단연 기차 여행의 꽃이다. '지구의 기를 직접 몸으로 느껴보려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라'는 말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두 번 왕복하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라고 한다.

1891년에 시작한 철도 공사는 무려 25년이 걸려 1916년에 완공되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따라 90여 개의 도시가 발달되어 있으며, 열차는 약 60개 역에 정차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쉬지 않고 6박 7일간 달리는데, 비행기로 직행해도 9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이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기차에서 시베리아의 장대함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무수한 자작나무, 끝이 없는 숲들, 통나무 정착촌, 광활한 스텝지대를 지나면 시베리아 소나무, 낙엽송, 전나무 등이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병풍처럼 서 있다. 열차는 시베리아의 장관인 바이칼 호수를 지나 이르쿠츠크, 라마교의 흔적이 있는 울란우데를 지나 끝없이 서쪽으로 달려간다. 노보시비르스크, 도스토옙스키의 유형지로 유명한 옴스크를 지나 시베리아의 마지막 역인 스베르들로프스크역 등을 지나 종점인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블역에 도착하면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대장정은 끝나게 된다.

◆낭만적인 특별한 인연의 우연한 만남

혼자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달리다 보면 마음속에는 특별한 인연의 우연한 만남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덜커덩거린다. 기억 속의 영화에서 기차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겹친다. 러시아를 가로지르는 열차 속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보기도 하며 광활한 대륙의 낯섦을 느끼게 된다. 수많은 러시아인들을 만나며 무척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러시아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또 열차 안에서 다른 국적의 여행가들을 만나는 또 다른 매력에 빠져들 수도 있다.

겨울 시베리아 횡단은 낭만 여행이다. 특히 하바로프스크에서 울란우데까지 약 54시간에 걸쳐 펼쳐지는 타이가 숲의 여정은 환상적이다. 눈 덮인 침엽수림과 늘씬한 자작나무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숲의 풍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숲 풍경을 바라보다 싫증 날 때쯤이면 침대에 팔베개하고 드러누웠다. 기차에서 흘러나오는 애절한 러시아 음악에 푹 젖어 나타샤, 라스콜리니코프 등 러시아 소설 속 주인공과 영화 닥터 지바고의 라라를 떠올렸다.

우리나라 부산을 출발점으로 하여 유럽까지 새로운 남북한 철도를 건설하여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연결하면 '21세기의 철의 실크로드'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망각의 대륙'시베리아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꿈의 대륙'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상상해 보라. 남북한 철도가 연결되면 부산에서 출발하여 대구를 지나 두만강을 건너 시베리아 열차와 만나 유럽까지 달리는 새로운 철도 길을.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한 거대한 대륙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시베리아 열차 여행. 열차 안에서 여러 날을 생활하며 이동하는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새로운 꿈을 설계하며 설원의 닥터 지바고가 되어보기를 바란다. '영욕의 땅'으로 변할 그날을 기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겨울 여행의 진수를 만끽하여 보길 바란다. 정차역마다 오르고 내리는 각국 여행객들을 만나고, 특히 보드카로 시작하는 러시아인들과의 만남은 알 수 없었던 그들의 삶과 정신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크렘린과 KGB, 철의 장막 등 부정적인 이미지의 단어들이 연상되는 러시아, 여기에 차이콥스키와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으로 대변되는 예술과 문학의 나라 러시아를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몸을 싣고 여행의 시발역이자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토크역을 출발하여 달리면서 광활한 대지가 주는 느림의 미학을 즐기려 떠났다.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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