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흥] 경북 동해안 '등대 기행'-(2) 경주·포항

경주 감포항을 지키는 송대말등대. 새 등대가 밤바다를 향해 빛을 쏘고 옛 등대가 경관조명으로 빛나는 풍경이 아름답다.
경주 감포항을 지키는 송대말등대. 새 등대가 밤바다를 향해 빛을 쏘고 옛 등대가 경관조명으로 빛나는 풍경이 아름답다.
호미곶등대 주변 바다 전망대는 늘 관광객들로 붐빈다.
호미곶등대 주변 바다 전망대는 늘 관광객들로 붐빈다.
마산항 선바우길 주변 얕은 해변에서 관광객이 해초를 따고 있다.
마산항 선바우길 주변 얕은 해변에서 관광객이 해초를 따고 있다.
감포항 해국길에는 해국 벽화가 그려진 계단이 있다.
감포항 해국길에는 해국 벽화가 그려진 계단이 있다.

해맞이 관광명소로 유명한 호미곶등대

마산항 선바우길엔 해초 따는 사람 붐벼

감은사지 3층 석탑 본뜬 새 송대말등대

감포항 해국길 벽화 계단, 꽃위 걷는 듯

빛이 어둠을 이겼다. 등대 불빛이 어둠을 뚫었다. 밤새 쉼이 없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외쳤다. "내 빛이 네 길을 인도하리라"고. 빛의 아우성이 배에 가닿았다. 길 없는 바다에서 길잡이가 됐다. 붉은 해가 수평선 위로 오르자, 등대는 빛을 거두었다. 밤 동안 듬직했다. 묵직한 빛줄기를 내뿜는 모습이 그랬다. 낮에는 의젓했다. 언덕 위 하얀 등탑이 다소곳하고 점잖아 보였다. 지리적 좌표이자 정서적 희망인 등대, 바다 여행의 보물이다.

◆호랑이 꼬리 '호미곶'의 상징

110년 전인 1907년 9월 9일 포항 호미곶 앞바다. 일본 수산실업전문대학원 실습선이 암초에 부딪쳤다. 실습선은 그대로 침몰했다. 타고 있던 4명 모두 목숨을 잃었다. 이 배는 연안의 해류와 수심을 조사하고 있었다. 일본은 사고 책임을 대한제국에 전가했다. 심지어 손해배상까지 요구했다. 이를 계기로 호미곶등대를 세웠다.

지난 주말, 일제 침략 역사의 한가운데 있던 호미곶등대를 찾았다. 인산인해였다. 주변은 관광명소가 됐다. 한반도 최동단으로, 일출을 보려고 많은 사람이 몰린다. 해맞이공원에는 전망대와 상징 조형물이 조성돼 있었다. 관광객들은 손 모양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바다 전망대에선 부서지는 파도를 감상하고, 갈매기에게 과자를 던져줬다.

등대에 대한 관심은 덜했다. 등대 앞에 혼자 서서, 한참 동안 바라봤다. 팔각형 서구식 건축 양식이었다. 등탑 아래부터 중간까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조금씩 좁아졌다. 중간부터 꼭대기까지는 직선으로 뻗었다. 아랫부분 곡선이 안정감 있게 받치고, 위로 갈수록 고양감(高揚感)이 느껴지는 구조였다. 출입문과 창문은 고대 그리스 신전 장식을 닮았다.

안내판의 설명을 읽었다. 다른 고층 건물과 달리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쌓았다고 한다. 그 높이가 26.4m. 아파트 9층 높이에 달한다. 광복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등대였다. 둘레가 밑부분이 24m, 윗부분이 17m이다. 내부는 6층으로 이뤄져 있고, 각층 천장에 대한제국 황실 문양인 오얏꽃이 새겨져 있다. 프랑스인이 설계했고, 시공은 중국인 기술자가 맡았다.

호미곶등대 인근 마산항(포항 남구 동해면)에 들렀다. 포구의 소박한 등대와 함께 산책길이 있어서다. 이름은 '선바우길'이다. 가파르게 깎아진 절벽을 따라 데크가 놓여 있었다. 절벽에 매달린 소나무가 있고, 전체가 흰색인 절벽도 눈길을 끌었다. 기울어진 햇빛이 얕은 해변을 비추자, 수평선이 흐려졌다. 하늘과 바다의 구분이 희미해졌다. 징검다리처럼 널려 있는 현무암이 그림자를 크게 불렸다. 마치 제주도의 한 해변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몇몇 사람이 해초를 따거나 낚시를 하려고 풍경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름다운 경관과 건축미, 송대말등대

오후 8시쯤 경주 감포항 방파제로 갔다. 빛에 홀려서다. 방파제 위에서 바닷가 언덕을 봤다. 두 등대가 서 있었다. 송대말등대였다. 두 등대는 같은 이름을 가졌다. 송대말은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이란 뜻으로, 지금도 수령 300~400년이 된 소나무가 주변에 무성했다. 둥근 달이 두 등대를 내려다보고, 파도가 해안 절벽의 허리춤을 간질이듯 오갔다.

바다 가까운 것이 옛 등대였다. 2001년 등대로서 은퇴를 했다. 46년 만에 빛을 내려놓았다. 지금은 경관조명을 받고 있다. 도화지같이 흰 등탑이 조명으로 물들었다. 빨강과 파랑, 초록, 노랑 등 화려했다.

옛 등대는 원형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이었다. 등탑 위에 철제 난간을 둘러 등명기를 감쌌다. 내부는 2개 층으로 돼 있고, 돔 형식의 등롱을 두었다. 반원형 캐노피인 출입구는 이탈리아 로마시대 건축물을 연상케 했다.

뒤에 것이 새 등대였다. 소나무 숲에 가려져 있었다. 우듬지 위로 고개를 내민 등명기가 바다를 향해 불빛을 쐈다. 빛줄기의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먼바다로 뻗은 빛은 먼 산 능선처럼 녹듯이 사라졌다. 빛의 도달 거리는 48㎞라고 한다.

새 등대의 모양에서 경주임을 실감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전통 건축 양식을 본떴기 때문이다. 등탑은 신라시대 건축 양식인 감은사지 3층 석탑의 모습을 그대로 옮겼다. 검은 기와지붕의 사무실 건물은 감은사 모양을 따라 지었다. 통일신라를 이룬 문무왕을 기리는 의미에서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불빛을 밝히고 있다.

감포항에서 해국길을 빼놓을 수 없었다. 감포시장 근처 600m 남짓한 소박한 골목이었다. 세월이 묻어나는 낡은 벽에 해국(海菊)이 그려졌다. 교회로 가는 계단에도 층층이 벽화가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모습이 마치 꽃 위에 앉은 나비처럼 보였다. 옛 목욕탕 건물 굴뚝의 말라붙은 담쟁이 줄기가 골목길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서경규 포항지방해양수산청 항로표지과 표지담당은 "등대가 항해 안전을 위한 항로표지 시설에서 해양문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지자체와 협의해 치미와 석탑 등 지역 특색에 맞춘 조형 등대를 늘리는 등 해양문화 확산을 위한 전초기지다"고 말했다.

※'흥'은 재미와 즐거움의 감탄사입니다. 신나는 레저 지면을 만들겠다는 다짐이기도합니다. 주인공은 독자 여러분입니다. 지역의 역사문화와 자연, 사람을 소개합니다. 새로운 접근과 재발견을 통해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기사를 만들겠습니다. 오직, 독자의 흥을 돋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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