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털보기자의 이슈 털기]<36>-TK 안방 두드리는 문재인 호

"이왕 대세가 된 문재인 후보에게 대구경북도 힘을 보태주십시오. 압도적으로 당선되어야 문 후보가 힘을 쓸 것 아닙니까."

지난 21일 문재인 대선후보의 총괄본부장인 송영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구를 찾아 사석에서 티타임을 가지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송 의원은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에 '대구사랑 국회의원 모임'을 발족한 멤버인지라 대구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구경북도 문재인 후보를 찍는 것이 국민통합'이라는 투의 말에는 왠지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전쟁에 비유하자면 큰 군사를 이끈 대군의 대장급 장수가 적진에 침투해 '이제 대세는 기울었으니, 보수의 본산인 대구경북도 두손 들고 항복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벌써 일부에서는 문재인 후보에게 줄을 대려고 하는 야당 성향의 지역 인사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것이 대구경북의 현실이다. 하지만 아직 50대 이상의 장'노년층 지역민들은 아직도 '그래도 대구는 박근혜'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신(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냄)이나 다름없는 문재인 후보는 무조건 싫다는 지역 정서도 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5월9일 보궐 대선(박근혜 전 대통령의 궐위사태)에서 정권교체는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경북이 사랑했던 2대에 걸친 부녀 대통령(구미에서 태어난 박정희, 대구가 고향인 박근혜)은 이제 루비콘강을 건너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흉탄에 저 세상으로 갔고, 그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첫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으며 국민들의 지탄에 대통령 자리에서 파면됐다. 만해 한용운의 시 한수('님의 침묵')가 떠오른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기고, '탄핵'이라는 절차를 거쳐 대구경북민의 사랑을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대구경북민은 또다시 정치적으로 '어둠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면, 모르긴해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리에 대한 단죄가 있을 것이다.

오래지 않은 과거이니 한번 돌이켜보자. 이명박 정권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족의 뇌물수수로 검찰에 소환돼 수모를 당했고, 결국 '자살'(2009년 5월23일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죽음)이라는 카드로 맞받았다. 극단적 선택이었지만 '자살'이라는 카드는 그 이듬해(2010년 6월2일) 전국 지자체 선거에서 '참여정부 시절의 노무현 인사들'을 대거 당선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친노의 대장인 문재인 후보가 그 아픔을 잊고 정치를 할 리가 없다. 문 후보가 말하는 '적폐청산', '과거와의 단절' 등은 아마도 보수에 대한 분노도 일정 부분 담고 있을 것이다. 만약 당선된다면 이명박 정부 시절의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산업 비리)에 대한 재수사와 박근혜 전 대통령 뿐 아니라 친박 인사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복수의 칼을 겨눌 것이다.

송 의원이 '대구경북도 문재인 후보에 힘을 실어달라'고 한 메시지는 어쩌면 '미미한 지지율에 그칠 경우에는 문 후보가 당선된 이후 대구경북은 국물도 없을 수 있다'는 의미로도 비칠 수 있다. 그래서 이러저래 TK는 괴롭다.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별달리 챙긴 것도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오히려 좋은 것(신공항, 대형 국책사업 등)은 다 뺏기고, 나쁜 것(사드, 원자력발전소 등)만 들여놨다.

보수 쪽에 눈을 씻고 찾아도 현 상황을 뒤짚을만한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의 1대1 양자대결로 간다해도 정권연장의 희망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형국이다. 며칠 전 '애국'을 부르짖는 지역의 한 80대 할머니의 얘기가 귓등을 스친다. "박근혜가 아무리 잘못 했기로소니, 유승민 의원이 그렇게 비수를 꽂을 수 있나." 막상 이렇게 힘겨운 현실에 처한 TK의 아픔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다. 단지, 앞으로 한 가지 바람은 있다. "누군지 모르지만 46일 후(5월9일)에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 될 야당 후보님!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제발 대구경북에 유치한 복수는 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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