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 산책] 선조 노닐던 폭포서 후손이 비극적 사고 당할 줄이야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 도연폭포.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 도연폭포.

모래 위 갈매기야, 날아가지 마시게나 김방걸

석양에 장대 들고 낚시터로 내려가니 一竿斜日下漁磯(일간사일하어기)

폭포에 산들바람 버들 솜이 휘날리네 澤國風輕柳絮飛(택국풍경류서비)

모래 위 갈매기야, 날아가지 마시게나 寄語沙鷗須莫擧(기어사구수막거)

너를 해칠 마음 따윈 없어진 지 오래거니 老夫心上久忘機(노부심상구망기)

*원제: 落淵釣魚(낙연조어)

1779년 3월 21일, 안동 도연폭포 부근에 은거하고 있었던 재야의 큰선비 난곡(蘭谷) 김강한(金江漢·1719~1779)이 세상을 떠났다. 장례 날은 무려 두 달 뒤인 5월 23일로 결정되었고, 장지는 큰 여울 건너편에 있었다. 장례 날은 서서히 다가오는데, 장마가 열흘 동안 계속되었다. 상주인 낙유재(樂有齋) 김시기(金始器·1751~1779)는 장례 날까지 계속 비가 내려 상여가 개울물을 건널 수 없는 뜻밖의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장례 닷새 전에 발상했다.

상여가 도연폭포의 바로 위쪽에 이르렀을 때, 상주는 상여에 올라가서 관을 붙들고 불어난 강물을 건너가기 시작했다. 물살은 예상 외로 격렬했다. 드디어 물굽이가 가장 세찬 곳에 이르렀을 때, 상두꾼들이 발을 헛디뎌 일행들이 모두 격류 속에 와장창 휘말려 버렸다. 위험을 느낀 상두꾼들은 상여를 내동댕이친 채 모두 어푸어푸 뛰쳐나왔다. "상주는 빨리 뛰어내려라. 뛰어내려라~". 떠내려가는 상여를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다급하게 고함을 쳤다. 그 비통한 고함이 골짜기에 온통 메아리쳤다. 폭포까지는 아직 100여 보 정도의 거리가 있었고, 주변에는 커다란 바위도 있었다. 뛰어내리기만 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뛰어내리지 않고 상여와 함께 폭포수 아래로 장렬하게 곤두박질해 버렸다.

아버지의 시신과 함께 폭포에 뛰어들어 익사해 버린 낙유재 김시기! 그의 이름 앞에는 효자라는 관형어가 늘 붙어다닌다. 하지만, 그를 정말 효자라고 할 수가 있을까? 아마도 그의 행위는 불효막심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의 영혼이 알았다면, 대를 끊어놓고 익사한 아들에게 호된 질책을 내렸을 테니까. 하지만, 그가 만약 상여에서 뛰어내렸다면, 아버지의 시신을 폭포에다 내동댕이치고 혼자 살아남은 불효막심으로 낙인 찍혀 한평생 하늘을 쳐다보지 못했을 게다.

위에서 소개한 작품은 그들의 직계 선조인 지촌(芝村) 김방걸(金邦杰·1623~1695)이 사건의 현장인 도연폭포에 노닐면서 지었던 시다. 보다시피 그는 버들 솜이 휘날리는 아름다운 봄날에 낚시질하면서 갈매기와 함께 유유자적하게 노닐고 있다. 이른 바 자연과의 교감이다. 그러나 만약 바로 그 폭포에서 훗날 후손의 상여가 거꾸로 처박히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줄을 그가 알았다면, 거기서 낚시질을 하며 갈매기와 놀 수 있었을까. 아마도 지촌은 화들짝 놀라 당장 멀리 이사를 하였을 게다. 낙유재도 물론 잠시 후에 일어날 그 엄청난 일을 미리 알았다면, 강물을 건너지 않았을 터다. 도무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절벽과도 같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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