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민주주의의 위기

평양고등보통학교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트럼프 취임 이후 행정명령 남발해

인종·종교 차별 등 편견에 가득 차

세계는 '열린 믿을 만한 美' 바라지만

대통령이 '오만·불손' 흙탕물 일으켜

브렉시트(Brexit)라는 단어는 새로 생긴 낱말로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난다'는 뜻이다. 대영제국이 어떻게 저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영국이 유럽연합을 선두에서 끌고 나가야지, 과거에도 비록 미온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EU의 멤버십만은 유지하던 영국이 어쩌자고 탈퇴를 결정했는가?

영국의 민주주의가 영국 정치를 미궁으로 몰아넣었다. 국민투표라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요 때로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국은 그 민주주의 때문에 오늘 곤경에 빠졌다고 할 수도 있다. 영국의 비교적 무식한 계층을, 뒤에서 조종한 선동정치가들은 물론 대부분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유식한 정치인들이지만 자신들의 입장을 세우고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해선 안 될 짓, 즉 EU 탈퇴를 감행하게 한 것이다. 그 문제가 쉽게 풀릴 과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로 인해 물러난 카메론 정권을 계승한 메이 여자 총리는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진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위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로 하여금 민주주의의 위기를 실감케 하는 또 하나의 큰 사건은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실이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후보의 선거전이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 트럼프의 당선을 점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또는 CNN, NBC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압도적으로 힐러리가 당선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대선의 결과는 정말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무슨 구실로든지 과거 18년 동안 3번이나 파산을 신고했고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억만장자인 부동산업자 도널드 트럼프, 선거전에 임한 '괴한' 트럼프의 교양 없는 언행은 세계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미국 유권자들 개개인의 표결은 트럼프가 아니고 클린턴이었다. 그러나 각 주의 권한을 존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선거인단표'는 압도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했기 때문에 힐러리는 이기고도 진 '비운의 여걸'이 된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굴러간다면 민주주의를 노래할 사람은 없다. 어떤 면에서 오늘의 미국 민주주의는 추태를 드러낸 셈이다.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고 100일(First Hundred Days)에 대통령만이 내릴 수 있는 '행정명령'으로 그 정권의 앞으로 4년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관례라고 하겠다. 그런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 남발한 '행정명령'은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헌법' 정신을 묵살하고 인종차별이나 종교차별 등 편견에 가득 찬 명령뿐이어서 아랍 7개국에서는 미국 입국이 힘들다 못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는 미국 법원의 제지를 무릅쓰고 멋대로 나가고 있다. 그의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매일같이 벌어지지만, 그는 이 모든 반대를 사탄이 하는 짓으로 여기고 있는 듯 끄떡도 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오늘의 미국 상하원이 한결같이 공화당판이기 때문에 당장에는 어쩔 도리가 없어 속수무책인 듯하다. '삼권분립'의 민주적 대원칙이 무너지고, 미국의 민주주의도 쓰레기통에 던져지고 만 것이 아닌가?

오늘도 CNN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는 인도 출신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가 꼭 10년 전인 2007년 6월 11일 자 '뉴스 위크'지에 '부시를 넘어'(Beyond Bush)라는 제목의 글을 한편 기고했다. 그는 그 글에서 "세계는 미국이 '열린 믿을 만한 미국'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왜 미국은 그렇게 되지 못하는가"라고 탄식한 것이다.

이미 10년 전에 자카리아는 강대한 중국의 등장을 예견했다. "권력은 총구(銃口)에서 나온다"고 서슴지 않고 공언한 마오쩌둥의 중국은 사실상 오늘 최강국이 되어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데, 미국을 주축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지 못하면 전쟁밖에는 대안이 없다는 위기감에 우리는 오늘 사로잡혀 있다. 중국이 세계질서를 평화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강대국은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하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선에 400억달러를 들여 담을 쌓겠다는 미국 대통령, '미국 먼저'(America First)밖에는 다른 구호를 찾지 못하는 미국의 45대 대통령 트럼프, 오바마 전 대통령의 '건강보험'에 전면 도전하는 후임 대통령, "오바마가 대선 중에 나를 도청했어"라는 따위의 유언비어를 서슴지 않는 트럼프.

미국이 너무 강한 나라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오만'과 '불손'이 문제인데, 드디어 그 탁류 가운데 오늘 대통령 트럼프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