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찾은 대구시 달서구 도원초등학교 3학년 1반 교실. 2교시 국어 '감동을 나누어요' 단원에서 전래동화인 '도깨비를 골탕먹인 농부'를 소재로 수업이 진행됐다. 20명의 학생들이 5개 모둠으로 나눠 디귿자 모양으로 앉아 동화 등장인물의 마음 알기에 빠져 있었다. 담임 이지혜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학생들은 짝과 함께 배역을 나눠 동화 속 장면을 실감 나게 읽어보고, 질문하면서 상대의 기분을 탐색하고 학습장에 기록했다. 발표 시간에는 다른 의견을 말하려는 아이들의 손들기가 연신 이어졌다. 교사는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조율하는 진행자 역할을 넘어서지 않았다. 다양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의견을 충분히 나누도록 유도했다. 또 각각의 모둠은 교실무대로 나와 동화 속 배역에 따라 '마임 드라마'로 표현하고, 성우처럼 '꿈꾸는 라디오'를 들려주었다. 발표가 끝나면 교사는 "남학생이 농부의 아내 역할을 잘했어요" 칭찬하고, "농부가 기뻐하면 도깨비의 기분은 어떨까요?" 질문을 이끌어 냈다. 이날 국어 수업은 2교시, 3교시가 이어진 '블록수업'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협력학습은 교사가 과목 및 단원의 내용에 따라 교육 과정을 재구성하거나, 수업 시간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대구산 새 수업방식 효과 주목
행복·정서·지적 역량 90% 쑥
소통능력 키워 인성교육 최적
2014년 전국 최초로 대구지역 초등학교에서 도입한 '교실 문화 개선을 위한 협력학습'이 학생, 학부모뿐만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서도 효용성을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대구시교육청이 교사, 학생, 학부모 등 6천3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초등 협력학습 성과 분석' 결과에 따르면, 행복역량함양 측면에서 정서적 역량(95.0%)과 지적 역량(90.7%) 향상이 입증됐다.
이와 같은 협력학습의 효과로 인해 전국에서 대구의 다양한 수업 방법을 벤치마킹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언어문화개선 자료집' 교육부 인성교육 우수사례로
학생, 교사, 학부모용 '언어문화개선 자료집'이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이 소통하고 배려하는 언어문화 조성을 통한 협력학습 활성화를 위해 발간했다.
2015년 '행복한 수업을 만드는 교수언어'(교사용)와 '친구야,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학생용)를 보급했고, 지난해에는 '아이의 마음을 여는 따뜻한 말하기'(학부모용)까지 3종류를 개발, 교실 수업과 인성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교육부는 전국 최초로 개발한 이 언어문화개선 자료집을 효과적인 인성교육 우수사례로 선정, 17개 시·도교육청 교원 연수에 소개했다.
교육 구성원 모두에게 바른 언어 사용의 지침서가 되는 이 자료집은 인성 교육 선도 교원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전국적으로 많은 시·도에 확산되고 있다.
◆호주와 글로벌 원격협력학습, 다른 시·도로 확산
대구시교육청이 호주 빅토리아 교육청과 협약을 맺은 '글로벌 원격협력학습'도 새로운 시도다. 두 나라의 교실을 웹카메라로 연결해, 두 나라 학생들이 동일한 주제를 정하고 서로 협력해 학습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수업 형태다. 2015년 출발 당시 6개의 초등학교로 시작했다가, 지난해부터 중학교로 확대되어 현재 20여 개 학교가 참여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의 글로벌 원격협력학습은 주한 호주대사관이 주최한 '한국-호주 학교 교류 워크숍'에 초청받아 우수사례로 발표했다.
이러한 대구의 모델을 바탕으로 올해 제주교육청은 호주 교육청과 협약을 맺고 3월부터 초·중학교에서 화상수업을 시범 운영하고, 충남교육청도 호주와의 원격화상 교실수업을 추진한다.
◆'교실수업개선 전국 워크숍' 대구 협력학습 성과 주목
지난해 9월 대구 대실초등학교서 열린 '인성교육중심 교실수업개선 전국 워크숍'에서 대구의 초등 협력학습 성과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자동수업녹화 시스템을 갖춘 '배움 나눔터'에서 실시한 수업 성찰 과정과 평가에 초점을 두고 수업을 설계하는 방식인 '백워드 디자인' 기반 프로젝트 학습은 교육부 및 한국교육과정 평가원 관계자, 전국 시·도 교육청 및 초등학교의 참석자들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자동수업녹화는 수업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할 수 있고 자동 녹화된 영상을 언제든지 보면서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서정하 시교육청 초등교육과장은 "지난 4년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대구의 협력학습 성과를 타 시'도교육청뿐만 아니라 사설학원까지 벤치마킹하고 있다. 이러한 교실수업개선 우수사례가 전국적인 수업 성장모델로 확대됨으로써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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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학습 효과 인정"
영어·수학 학원들도 '학교 배우기' 기현상
하브루타·플립러닝 잇단 도입
대구의 초등학교에서 이뤄지는 협력학습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지역의 학원가에서도 이에 대한 벤치마킹을시작했다.
외국어, 독서, 학습지도법 등 다양한 영역의 학원들이 토론식 교수법을 차용하고 있다. 협력학습의 여러 형태인 토론식 수업, 거꾸로 교실을 통한 자기주도학습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수업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지난해 말 수성구에서 문을 연 한 보습학원은 학원 상호에 '하브루타'라는 명칭을 붙였다. 질문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는 능력을 기르는 하브루타 수업방식을 표방한다는 것이다. 학원 측은 교사가 수업을 하고 개념에 대해 서로 질문하면서 반복학습으로 완벽한 이해를 이끌어 낸다고 주장한다.
초등학생 대상 학원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 대상의 영어, 수학 보습학원도 개인별 수준에 맞는 협력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하브루타 영재 수학수업, 발표 학습(플립러닝)을 통해 개정 교육과정에 맞춘 체계적인 1대1 맞춤 학습을 제공한다고 밝힌다.
한 학원의 원장은 "집사람이 교사라서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는 협력학습의 긍정적인 효과를 듣게 됐다"면서 "학원 수업에도 재원생들의 학업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업방식을 적용하고 싶었다"고 했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예전에는 학교가 학원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젠 교실수업 개선을 위한 협력학습이 사설학원에까지 입소문이 나면서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석수 기자
■ 협력학습=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 등 2명 이상이 서로 협력적 관계를 맺어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교수학습 방법 및 수업 철학이다. 예전처럼 교사의 일방적 지식 전달 위주의 수업이 아닌 토의'토론학습, 프로젝트학습, 하브루타 수업, 거꾸로 교실 등 다양한 학생 참여 활동 중심의 수업 방법을 적용해 교실 수업 개선에 유의미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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