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이미지는 '우아' '고상' '정갈' '단아' 등 잔잔한 멋으로 표현된다. 한평생 한복을 지어오고 있는 박태복(69) 한복 명장은 전통 방식 그대로에 그만의 색을 입혀 고급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의 명품 한복을 만들고 있다. '박태복한복연구원'(대구 남구 이천동)을 운영하고 있는 박 명장은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한복 인생이 어느덧 수십 년째 이어져 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바느질을 하면서 실증을 느껴본 적이 없다"며 "앞으로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활짝 웃어 보였다.
◆"바느질이 유일한 취미"
포항에서 8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박 명장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다. 그런 이유로 바깥에서 뛰어노는 것보다는 방 안에서 손으로 하는 놀이를 좋아했다. "당시엔 장난감도 없어 자연스레 어머니 옆에서 바느질을 하면서 놀았다"고 회상했다.
박 명장은 눈썰미와 손재주가 남달랐다. "재주가 있었던지 한 번 보면 그대로 따라할 수 있어 초등학교 5학년 때 동생들 바지나 저고리를 지어 몰래 장롱에 넣어두면 동생들이 입어보곤 '새 옷'이라며 좋아했다"고 했다. 그러나 선비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박 명장의 바느질 솜씨를 인정하면서도 "여자가 손재주가 많으면 박복하다"며 못 하게 말렸다.
20세에 대구로 이사 온 박 명장은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양장학원에 다녔다. 그러나 한복이 좋았다. "양장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지만 한복은 옷감 선택부터 몸 치수를 재고, 마름질한 후 바느질까지 혼자 하는 일"이라며 "어떻게 보면 내 성격에 딱 맞았다"고 했다. 그동안 한사코 반대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윤만을 추구하지는 마라. 시작하면 지극 정성으로 옷을 지으라"며 허락했다.
1983년 복장학원을 운영하며 한복 짓는 방법을 가르쳤다. 10년 뒤 한복전문매장 '한복연구원'을 차렸다. 당시 '한복점' '한복방' 등으로 칭했는데 '연구원'이란 명칭은 박 명장이 처음 사용했다. "그냥 옷만 짓는 한복점이 아닌 연구하면서 옷을 만드는 전문적인 매장을 운영하고 싶었다. 그만큼 한복에 관해선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박 명장은 바느질이 적성에도 딱 맞다고 했다. "7, 8시간 앉아서 일을 해도 팔다리는 물론 몸의 어느 한구석도 아프지 않다"며 "오히려 수행하는 것처럼 차분해진다. 바느질이 체질인가 봐요."
◆우리 전통 지킨다는 자부심'사명감
박 명장의 바느질 솜씨는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했다. 1973년 패션디자인 산업기사를 시작으로 2001년 한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해 한복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됐다. 2000년 온고을 전통공예 전국공모전에서는 해인사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 개금불사 때 수습된 요선철릭(腰線帖裏: 허리에 선 장식이 있는 무관이 입던 공복) 복식을 복원한 작품을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
한복 연구를 계속한 박 명장은 한복 저고리 설계치수 산정법을 공식화해 특허 2건, 실용신안 2건을 취득하는 등 한복 관련 공정과 품질을 개선했다. 특히 그의 특허는 "한복을 과학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평을 들었다. 대부분의 한복은 시간이 지나면 올이 울고 틀어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손으로 일일이 올을 세워 바느질한 박 명장의 옷은 10년이 지나도 틀어지거나 우는 법이 없다. 그래서 박 명장의 한복을 입어본 고객은 반드시 다시 찾는다고 했다.
기술과 경력을 인정받은 박 명장은 1980년 후반부터는 전국기능경기대회 한복 부문 심사위원 및 문제 출제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농어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11년 대한민국 한복 명장으로 선정됐다.
박 명장은 문화와 전통이 사라진 나라와 민족은 그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나타내는 많은 전통과 문화가 있다. 이 가운데 한복에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한이 서려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한복의 선과 색채에도 녹아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한복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민족의 전통과 역사의 명맥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복이란?
박 명장은 한복은 아름다운 것 외에도 매력있는 옷이라고 했다. 한복 앞여밈의 평면적 구성은 여유로움과 여백의 미, 인체를 속박하지 않는 넉넉함, 착용의 편리성을 내포하고 있는 점 등을 들었다. 그래서 한복은 과학적이고 위생적이고 기능적이라는 찬사가 나온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한복은 체형의 단점을 가려주는 미덕도 갖추고 있다고도 했다.
박 명장은 계절에 맞는 한복을 입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한복에는 우리 조상의 슬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계절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한복이면 다 같은 한복인 줄 안다. 한복 한 벌로 계절 구분 없이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박 명장은 "텅 빈 마음으로 지은 옷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은 옷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기운 솔기에 흔적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옷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이라며 "옷 짓는 사람이 아무 사심 없이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바느질해 만든 것이라야 누가 입어도 편한 옷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박 명장에게 바느질 인생의 화두는 '편안함'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할 때도 '솜씨'니 '정성'이니 하는 말을 하면서도 '비운 마음' '편안함'이라는 말을 더 자주 썼다. 무념, 무심으로 바느질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은 알지만, 바느질을 하다 보면 온갖 번뇌와 망상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박 명장은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나가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렇게 편안해지는 마음이 좋아서 한복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박 명장은 그러나 "전통을 너무 벗어나면 우리 옷 고유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렇다고 전통만 고집하다 보면 시대에 뒤떨어지기 쉬워 전통을 바탕으로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복 고유의 모습은 유지하되 현대적인 세련미와 세계적인 패션 트렌드에도 부합하는 한복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고 했다.
◆한복 관련 책 내고 작품은 기증할 계획
박 명장은 평생 한복 짓는 일을 해오면서도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요즘도 매일 '박태복한복연구원'에 출근해 주문한 옷을 짓거나 작품을 만든다. "생각해 보면 힘들었을 것 같지만 당시에는 힘든 줄 모르고 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박 명장은 명장이 된 후 대학에서 한복과 수의 등을 강의했으나 요즘은 산업현장 교수로 관련 업체를 돕고 있다. 박 명장은 "지금까지의 경험에 이론을 더해 한복 관련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일을 그만둘 때쯤 지금까지 만든 작품을 공공기관에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개인전시관이나 박물관을 만들고 싶지만 어려울 것 같아 기증할 생각"이라고 했다.
박 명장은 끝으로 "간섭하지 않고 지금껏 도와준 남편이 고맙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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