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는 성공한 대통령이다. 미 의회방송(C-SPAN)이 얼마 전 역사가와 정부 전문가 91명에게 물은 결과 역대 미국 대통령 중 12번째로 손꼽았다. 케네디나 레이건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첫 흑인 대통령의 지도력과 도덕성 등을 높게 쳤다. 이런 호평은 그가 괜찮은, 매력 있는 정치 지도자라는 뜻이다.
일반 미국인 대상의 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다. '현직보다 나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취임 직후 지지율이 역대 최저인 30%대로 추락했다. 반면 옷을 벗은 오바마 지지율은 60%대를 넘나든다. 프랑스에서 수만 명이 "제25대 공화국 대통령으로 모시자"며 온라인 청원에 서명할 정도면 속된 말로 '그놈의 인기'라는 말도 나올 법하다.
돌이켜보면 대통령에 도전한 오바마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의 이상한 이름만큼 생경했다. 2008년 선거 때 민주당 분위기는 싸늘했다. 저평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조롱하고 비판했다. 러닝메이트인 조 바이든 부통령은 오바마와 말도 섞지 않을 정도였다. 빌 클린턴은 대놓고 깎아내렸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 커피 심부름이나 했을 인물"이라며 비아냥댔다. "피부색이 너무 검지 않고 니그로 방언도 쓰지 않는다"며 은근히 무시한 민주당 거물급 인사도 있었다. 기자들이 미국 대선 막후를 조명한 책 '게임 체인지'에서 이 에피소드를 공개해 파문이 컸다.
대선 후보 오바마는 조직력도 처졌다. 하지만 미국의 정신과 비전, 희망과 통합을 강조하며 침착하게 선거 캠페인을 진행했다. 오바마 캠프는 고비 때마다 단결했고 변화를 외쳤다. 젊고 스마트한 이미지의 오바마는 힐러리 대세론도 무너뜨렸다. 공화당은 적수조차 되지 못했다.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체면을 구긴 매케인 후보나 '급조된' 세라 페일린은 오히려 오바마를 돋보이게 했다. 말 그대로 '포일(Foil) 효과' 수준이었다. 오바마의 승리는 권력이 아니라 미국을 본 결과다. 유권자들은 온유한 자신감과 진정성이 배어 나오는 오바마의 맑은 눈빛과 미소 띤 얼굴, 울림이 큰 연설에 표로 화답했다.
재임 중 공화당이라면 치를 떨 만큼 분노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지만 그는 결코 교만하지 않았다. 언제든 적에게도 손을 내밀 줄 아는 지도자였다. 그는 백악관의 말단 직원, 소시민 누구와도 주먹을 부딪치며 소통했다. 정중하면서도 소탈하고 인간미가 넘쳤다.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끈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8년 임기를 마무리한 오바마에게 허접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우리 대선이 코앞이다. 장미꽃이 한창인 5월에 치른다고 '장미 대선'이라고 부르지만 장밋빛 미래를 여는 선거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비정상의 국가 시스템을 정상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도자가 뽑힌다면 만족이다. 적어도 물결을 잘 살피고 배를 바르게 몰아가는 선장이면 됐다.
2017년 현 대한민국이 바라는 지도자는 프랑스 대혁명 초기 '국가가 파산했다'라는 연설로 주목받은 콩트 드 미라보 같은 인물이 아니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현실을 꿰뚫어보고 잘못된 것을 하나씩 바꿔나가는 지도자, 신중하면서도 바른 결단력을 가진 '알뜰한'(참되고 지극한) 대통령을 원한다.
문재인 후보가 대세론을 업고 대선 레이스에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그가 국민을 풍파로 몰아넣지 않을 지도자인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 "검증된 후보"라고 말하지만 글쎄다. 대다수 국민은 그의 리더십과 비전, 도덕성과 국정 수행 능력을 알지 못한다. 그를 떠받치는 세력의 극성맞음 정도만 안다.
40여 일 후 장미 대선이 국민이 진정 주인 대접을 받는 선거가 될지, 아니면 노랫말 처연한 '봄날은 간다'를 읊조리는 선거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겨우 악몽에서 벗어난 국민이 또다시 가위눌림에 허우적댄다면 '봄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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