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 의료계도 AI시대] "암 치료하러 서울로? 제가 더 잘해요" 자신만만 'Dr. 왓슨'

대구가톨릭대병원·계명대 동산병원 도입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지난 20일 IBM과 의료용 인공지능(AI)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지난 20일 IBM과 의료용 인공지능(AI) '왓슨 포 온콜로지'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제공
27일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왓슨 포 온콜로지 운영 교육을 받고 있다.
27일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왓슨 포 온콜로지 운영 교육을 받고 있다.

IBM의 의료용 인공지능(AI) '왓슨 포 온콜로지' 도입을 계기로 지역 의료계에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된다. 암환자 치료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오류를 획기적으로 줄여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는 의료진의 진단과 결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 의사와 환자 간 신뢰도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1천500만 쪽 이상의 의료 빅데이터 분석

27일 오후 계명대 동산병원 암센터 '왓슨실'.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환자의 영상검사 사진이 떠 있었다. 의료진은 프로그램 운용 방법을 강의하는 IBM 측 담당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교육에는 대장항문외과, 유방갑상선외과, 병리과, 영상의학과, 혈액종양내과 등 전문의 20여 명이 참석했다.

IBM 담당자가 환자 나이와 체내 종양 분포, 중증도, 과거 진료 기록 및 영상사진 등을 입력하고 버튼을 누르자 의료용 인공지능 왓슨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10여 초도 되지 않아 왓슨이 추천하는 호르몬요법과 항암제 등의 목록과 기대생존율, 우선순위 등이 화면에 나타났다.

왓슨이 암환자에게 치료법을 추천하는 방법은 '진짜' 의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양한 환자 정보를 판단하고 지금까지 제시된 연구 자료와 대조한다. 각 치료 옵션에 만성질환 같은 기존 질환, 약물 또는 치료 금기 사유, 약품 정보 등을 토대로 명백한 근거를 확인하는 재검증 절차도 거친다. 이를 토대로 왓슨만의 특수한 알고리즘을 이용해 치료 옵션의 점수를 매기고,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각 치료법은 항암요법과 호르몬요법, 수술, 방사선 치료 등 4가지 분류에 따라 제시된다. 생존율이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치료법은 초록색, 차선책은 노란색, 추천하지 않는 치료법은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의료진은 왓슨의 추천을 검토하되 환자의 건강 상태와 경제적 상황, 수술 예후 등을 감안해 치료법을 최종 결정한다.

왓슨은 지난 2012년 미국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에서 '전공의 생활'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도 교육을 받고 있다. 왓슨은 1천500만 쪽 분량의 암 치료 연구 자료뿐만 아니라 하루 평균 122건씩 발표되는 방대한 암 논문을 수집해 활용한다. 권오춘 대구가톨릭대병원장은 "왓슨의 적용 분야가 확대되면 불필요한 검사 남용을 막을 수 있어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줄게 된다"면서 "환자 개개인의 검사 결과와 특성을 데이터화 및 분석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도권 환자 유출 막을 비책 되나

대구가톨릭대병원과 계명대 동산병원의 왓슨 도입은 인공지능과의 협업을 무기로 지역 암환자들의 수도권 유출을 막겠다는 포석이다. 지역 의료진의 결정을 믿지 못하고 서울 대형 병원으로 향하는 환자들의 불편을 덜고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들 병원은 각각 2년간 6억원을 들여 왓슨을 운영한다. 우선 폐암, 유방암, 위암, 대장암, 직장암, 자궁경부암 등 6대 암 분야에 왓슨을 적용할 예정이다.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지난해 개관한 암센터'장기이식센터 1층에 '인공지능 암센터'를 개소하고 왓슨을 활용한다. 계명대 동산병원도 암센터에 '왓슨실'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에 나서기로 했다.

두 병원 모두 다학제 진료를 적용해 각 분야의 교수 4~6명이 10~20분간 환자 1명을 진단한다. 왓슨이 치료법을 제안하는 시간은 평균 8초이며 '추천, 고려, 비추천' 등 3가지를 제시한다. 다학제 진료팀은 토론을 거쳐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결정한다. 왓슨의 적용 분야는 다른 암종 분야로 점차 넓어질 전망이다. 박건욱 계명대 동산병원 암연구소장(혈액종양내과)은 "왓슨은 매일 쏟아지는 방대한 양의 최신 의학자료를 실시간 업데이트하므로 최적의 치료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서 "지역 암환자들이 더 나은 치료법을 찾아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을 전전하는 관행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암환자라고 모두 왓슨을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왓슨 진단에 적합한 기준은 암종별로 다르고 환자의 중증도도 다양하다. 따라서 적합 판정을 받아야 암종별 다학제 진료 일정에 맞춰 왓슨 전용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다. 왓슨을 이용할 수 있는 환자 수도 2년간 1천 명으로 제한돼 있다. 손호상 대구가톨릭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인공지능 암센터에서 예약을 하면 코디네이터 상담과 주치의 외래진료를 거쳐 환자의 상태를 파악한 후 다학제 진료와 병행하는 방식으로 진료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왓슨, 어디까지 확대될까

왓슨은 확장성에 강점이 있는 개방형 플랫폼이다. 이는 암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진료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IBM은 암 이외의 분야에도 왓슨의 활용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의사들이 정확하게 병을 진단할 수 있도록 이미지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 중이고, 면역 항암제 분야에 적용되는 '왓슨 포 드럭 디스커버리'(Watson for Drug Discovery)도 발표했다. 면역 항암제 분야로의 확대를 위해 왓슨에 머신러닝 기능과 자연어 처리 기능, 기타 인지 추론 기능 등을 적용하고 2천5만 개의 제약 분야 초록, 100만 개 이상의 의학 저널과 논문, 그리고 400만 개의 특허를 학습시켰다.

그러나 왓슨이 모든 치료법을 다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항암제의 경우 용량까지 제시하지만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의 경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까지 명시하진 않는다. 방사선 치료 기간이나 방사선량, 기기 종류와 횟수 등은 제시하지 않는다. 수술 역시 '수술이 필요하다'고만 할 뿐 복강경이나 로봇수술, 개복수술 등의 수술 방식은 의료진이 판단해야 한다. 정확성이 높은 편이지만 암종별로 일치도가 들쭉날쭉한 점도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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