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장애 1급 박모 씨는 자신의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 고향이 어딘지, 부모가 누군지, 형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흘러온 한 시골 장터에서 낯모를 사람에게 이끌려 40년 가까운 세월을 머슴으로 살았다. 제대로 된 음식과 옷도 없이 그저 일만 하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새경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장애인 지원금 역시 박 씨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박 씨는 머슴보다 못한 '노예' 생활을 하며 6.6㎡ 남짓한 골방에서 30년 이상을 버텼다.
박 씨가 머슴 생활을 시작한 건 대략 1980년 가을쯤이다. 당시 울진군 북면 장터를 헤매던 박 씨를 한 여성이 집으로 데려갔다. 박 씨는 그때부터 이 여성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도우며 살았다. 1995년 3월 이 여성이 숨지자 아들인 전모(59) 씨가 직장을 관두고 귀향했다. 그동안 박 씨는 전 씨 삼촌집에서 6개월, 누나 집에서 1년간 살며 이 집안의 머슴 생활을 이어갔다.
1997년쯤 전 씨는 박 씨를 집으로 데려와 본격적인 보호자로 나섰다. 전 씨는 박 씨의 호적 등재 허가를 받아주고, 병원에서 정신지체장애 1급 진단도 받도록 했다. 이로써 박 씨는 1962년생이 됐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박 씨를 위한 게 아니었다. 전 씨는 박 씨를 창고 같은 뒷방에 데려다 놓고 머슴으로 부렸다. 9천㎡에 가까운 전 씨의 농사일은 모두 박 씨 몫이었다. 심지어 동네 주민 품앗이나 건축일에도 내몰렸다. 그렇게 벌어들인 일당은 고스란히 전 씨 주머니로 들어갔다. 삯은 고사하고 새까맣게 더럽혀진 작업복과 매일 주어지는 양푼에 담은 밥과 반찬이 박 씨의 전부였다.
심지어 전 씨는 박 씨가 지내는 뒷방과 본채가 이어지는 통로를 막아버려, 박 씨는 추운 겨울에도 바깥에 있는 수돗가에서 찬물로 샤워와 빨래를 해야 했다. 1997년 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박 씨에게 울진군청이 지급한 복지급여와 장애인연금 1억100여만원도 전 씨가 직접 통장을 관리하며 9천920여만원을 꺼내 썼다.
울진경찰서는 27일 전 씨를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납치'감금 혐의는 행위 당사자인 전 씨 모친이 숨진 관계로 적용이 어려울 전망이다.
울진경찰서 관계자는 "근대화 이전 농촌에 있던 머슴이 오늘날에도 노예와 같은 형태로 이어져 온 사실이 놀랍다"면서 "죄인지도 모르고 그저 '과거부터 머슴을 부렸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 있을 것으로 본다. 그들에게도 최소한의 대우와 인권을 보장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전 씨가 마을 이장으로 근무하며 63회에 걸쳐 '한울원전 주변지역 소득증대 사업' 지원금 중 4천700여만원을, 20회에 걸쳐 마을기금 1천600여만원을 개인적으로 쓴 혐의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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