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재원의 새論 새評] "뒷일을 부탁합니다"

부산대 졸업. 영국 엑시터 대학 국제학 석사.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정의화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부산대 졸업. 영국 엑시터 대학 국제학 석사.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정의화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세월호 뒷일 정권의 무책임·거짓말

대통령 파면된 날 인양 소식 들려와

정치적 잣대로 국민들 이간질 폐기

미수습자 수색·사고 원인 철저 규명

"뒷일을 부탁합니다." 지난 일요일(26일) 아침 인양된 세월호 선체를 TV에서 본 순간, 왜 이 말이 떠올랐을까. 여기저기 긁히고, 해초와 갯벌로 거무튀튀한 모습으로 클로즈업된 세월호. 가슴 저 밑에서부터 먹먹함과 함께 분노가 솟아 올라왔다. 그런데 뇌리에는 고(故) 김관홍 잠수사가 이승을 뜨기 전 남겼다는 그 말이 스쳐 지나갔다. 차디찬 맹골수도에서 곧 목포신항으로 떠날 세월호가 마치 입을 열어 호소하듯 말이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는 세월호 앞에선 죄인이었다. 채 꽃도 피워보기도 전에 스러져간 어린 학생들과 그 숱한 생명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그래서 TV로 생중계된 침몰 순간의 영상은 악몽처럼 되살아나곤 했다. 그러나 더 부끄럽고 참담한 것은 사고 '뒷일'이었다.

"진상 규명에 있어 유족 여러분들이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 대통령의 이 말은 차라리 안 하느니보다 못한 것이었다.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을 요구하는 절규는 번번이 경찰 저지선에 막혀버렸다. 국회를 찾은 대통령은 농성 유가족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여당 의원들은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농성 유가족은 노숙자로, 세월호 참사는 교통사고로, 어렵게 꾸려진 '세월호특조위'는 세금 도둑으로 매도당했다.

급기야 세월호는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정권의 편리한 '잣대'가 돼버렸다. 세월호 관련 글을 실었다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학동네'가 하나의 사례. 그 직후 정부의 각종 지원이 끊겼던 까닭을 비로소 안 것은 최순실 국정 농단 조사에 나선 특검 덕택이었다. 세월호 구조 당시 문제점을 다큐로 만든 '다이빙벨'을 초청작에 넣었던 부산국제영화제. 그 역시 예산 삭감에다 집행위원장 경질 등으로 혼쭐이 났다.

선한 의지로 현장으로 달려간 시민들마저 조롱당했다. "(사고 현장에 투입된) 민간 잠수사의 일당이 100만∼150만원이고, 시신 한 구를 인양하면 500만원을 받는 조건으로 일하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의 말에 잠수사들은 저마다 가슴을 쳤다. "저희는 돈을 벌러 간 게 아닙니다. 국민이기 때문에 달려간 거고, 제 직업이, 제가 가진 기술이 그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것일 뿐입니다."(세월호특조위 1차 청문회, 김관홍 잠수사) 스스로 애국자나 영웅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희생자들은 극심한 공포와 낮은 수온과 수압에 의해서 아주 고통스럽게 사망했습니다. (서로) 얽혀 있어서 달래듯이 저희 손으로 한 구 한 구 안아서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2015년 국회 국정감사) 가족들 품으로 돌아온 292명의 희생자들은 모두 그렇게 인도되었다. 정작 그는 지독한 '잠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지난해 6월 돌연사로 세상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러나 세월호 '뒷일'에 대한 정권적 차원의 무책임, 조롱, 거짓말, 편 가르기마저 기억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말 못할 분노는 모두의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폭발하고 말았다. 지난 늦가을 매 주말 거리를 가득 메웠던 촛불이 뇌관이었다. 비선 실세에 휘둘린 대통령 행적을 캐던 시선은 '세월호 7시간'에 오랫동안 멈췄다. 진상이 온전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피청구인은 최상위 단계의 위기 경보가 발령되었고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였음에도 재난 상황을 해결하려는 의지나 노력이 부족하였다."(헌법재판소 대통령 박근혜 탄핵 결정문)

공교롭게도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파면된 날 세월호 인양 소식이 전해졌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박근혜 내려가니, 세월호 올라왔다." 그 진실이 무엇이든, 이제야말로 '뒷일'을 제대로 마무리해야 한다. 미수습자 수색, 철저한 사고 원인 규명, 걸맞은 대책. 분명 필요하다. 반면 사람보다 돈부터 따지는 경제 우선 논리, 정치적 잣대로 국민을 재단하고 이간질하는 행위. 정말 폐기해야 한다. 너무나도 비싼 교훈이지만, 이 정도라도 건져야 억울한 희생자들에게 낯이 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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