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두환 회고록 출간] "최태민, 박근혜 업고 수많은 물의…10·26 후 군부대 격리"

대통령 선출∼재임∼퇴임 과정 총 3권으로 구성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대권 도전 의지를 보이며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전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역량으로는 무리라는 판단에 대권의 꿈을 접으라는 뜻을 전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대권 도전 의지를 보이며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전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역량으로는 무리라는 판단에 대권의 꿈을 접으라는 뜻을 전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다음 달 초 회고록을 출간한다. 모두 2천 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으로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담은 1권 '혼돈의 시대' ▷대통령 재임 중 국정수행 내용을 서술한 2권 '청와대 시절' ▷성장 과정과 군인 시절'대통령 퇴임 후 일들을 담은 3권 '황야에 서다' 등 총 세 권으로 구성됐다.

▶"최태민, 박근혜 업고 많은 물의…10'26 후 군부대 격리"

전두환 전 대통령이 10'26 사건 직후 박정희 정권에서 각종 비행을 일삼았던 최순실 씨의 아버지 최태민(1912~1994) 씨를 전방 군부대에 격리 조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 대통령은 "10'26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영애 근혜 양과 함께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 등을 주도해왔던 최태민 씨를 상당 시간 전방의 군부대에 격리시켜 놓았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최 씨에 대해 "그때까지 (박)근혜 양을 등에 업고 많은 물의를 빚어낸 바 있고 그로 인해 생전의 박정희 대통령을 괴롭혀 온 사실은 이미 관계기관에서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며 "최태민 씨가 더 이상 박정희 대통령 유족의 주변을 맴돌며 비행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격리를 시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전 전 대통령은 그러나 "최 씨 행적을 캐다 보면 박정희 대통령과 그 유족의 명예에 큰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전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나의 이러한 조치가 근혜 양의 뜻에는 맞지 않았을지 모른다"며 "그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국봉사단 등의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왔지만 시대 상황에 비춰볼 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10'26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달된 '뭉칫돈'의 액수와 성격도 밝혔다. 회고록에 따르면 10'26 직후 당시 합동수사본부는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 방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금고를 발견, 9억5천만원 상당의 수표와 현금을 찾아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자금이었다는 권숙정 비서실장 보좌관의 진술에 따라 이 돈은 전액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 전 대통령은 "얼마 후 박근혜 씨가 10'26 진상을 철저히 밝혀달라는 부탁과 함께 내게 수사비에 보태달라며 3억5천만원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박정희 지우기'에 나서는 등 배신했다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 "'비판적 계승자'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배신했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고 강하게 부인하면서 오히려 유족을 예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직 수행 어렵다고 봤다…지원 요청 거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대권 도전 의지를 보이며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전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역량으로는 무리라는 판단에 대권의 꿈을 접으라는 뜻을 전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회고록에 따르면 2002년 2월 당시 이회창 총재가 이끌던 한나라당을 탈당해 3개월 뒤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박근혜 의원은 대권 도전을 시사하며 전 전 대통령에게 지원을 부탁했다.

전 전 대통령은 "박근혜 의원은 내게 사람들을 보내 자신의 대권 의지를 내비치며 힘을 보태줄 것을 요청해왔다"면서 "나는 생각 끝에 완곡하게 그런 뜻을 접으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박 의원이 지닌 여건과 능력으로는 무리한 욕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서 "박 의원이 대통령이 되는 데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봤고, 실패했을 경우 '아버지를 욕보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전하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그해 12월 19일에 실시된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전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나의 이러한 모든 선의의 조치와 충고가 (박근혜 전 대통령) 고깝게 받아들여졌다면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노태우가 나에게 직선제 반대하는 모습 연출하라 요구"

전두환 전 대통령은 6'29 선언을 준비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직선제 개헌을 건의할 테니 크게 노해 호통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직선제를 비롯한 민주화 조치를 극적으로 수용하고 이에 반대하는 전 전 대통령에 강력히 반발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최대한 높이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전 전 대통령의 주장이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1987년 6월 17일 오전 10시 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노 전 대통령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렀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당시 상황에 대해 "나는 마주 앉은 노태우 대표에게 먼저 긴 설명 없이 국민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직선제 수용을 전제로 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기술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일언지하에 반대했다고 전 전 대통령은 밝혔다.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직선제 개헌에 반대했다는 것. 첫째 민정당이 4'13 조치에 따라 호헌을 주장해오다 당론을 바꿔 지금까지 내각책임제의 장점을 홍보해왔는데 이제 다시 직선제를 받는다고 하면 민정당 내부를 설득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두 번째는 직선제 아래서 과연 승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전 전 대통령은 직선제로 해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설득했다고 한다.

이틀 뒤 6월 19일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별관에서 다시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직선제 수용 지시를 따르겠다면서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직선제 수용을 포함한 민주화 조치를 건의한 것으로 하고 전 전 대통령이 크게 노해 호통치는 그림을 연출해달라는 것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고심 끝에 노 전 대통령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6월 22일 그를 다시 청와대로 불렀다. 전 전 대통령은 그날 "나더러 반대해달라고 한 것은 없던 일로 하자. 그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고 위선적인 처사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는데 나중에 진실이 알려지면 훗날 나와 노 대표를 국민이 어떻게 볼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며 노 전 대통령을 타일렀다고 했다.

이날 저녁 전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다시 불러 청와대 별관에서 만찬을 함께하며 노 전 대통령에게 6'29선언의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해 전권을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6'29선언 전 27일 청와대 별관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자필로 써온 발표문을 낭독했다고 전 전 대통령은 기술했다.

전 전 대통령은 "재야에 밀리는 상황에서 발표하면 빛이 나지 않으니까 민헌국(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 주최하는 대행진 행사의 추이를 지켜보고 일요일인 28일을 하루 더 지켜본 뒤 조용하게 되면 29일 극적으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제6공화국의 문을 연 6'29선언 발표일은 이렇게 정해졌다고 전 전 대통령은 증언했다.

▶"최규하, '대통령직 승계' 과정 안 밝혀 아쉬움"

전두환 전 대통령은 30일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이 10'26 사건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과정과 10개월간의 재임 기간에 대해 끝까지 침묵한 채 해명하지 않아 아쉬웠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10'26 이틀 뒤인 1979년 10월 28일 최 전 대통령과 처음 독대했고 이후 최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까지 최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거나 통화한 일은 모두 70회나 된다"고 적었다.

그는 최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 승계와 재임 기간 활동에 대해 끝까지 함구한 데 대한 개인적 아쉬움도 털어놨다. 그는 "내가 12'12 때 겁박했다거나, 그 어른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몰고 갔다거나 하는 음해를 받는 사실에 대해 속 시원한 해명 말씀 없이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다"고 적었다.

전 전 대통령은 "그 어른이 자신의 후임으로 나 전두환을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그분의 자유의사에 의한 통치 차원의 결정이었다는 사실과 그 어른이 사임 여부와 사임 일정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최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 역사적 사실의 전모와 진실을 당당히 밝혀주시기를 바라는 내 마음은 간절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최 전 대통령은 이미 병환이 깊어져 있었다고 전 전 대통령은 회고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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