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다음 달 초 회고록을 출간한다. 모두 2천 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으로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담은 1권 '혼돈의 시대' ▷대통령 재임 중 국정수행 내용을 서술한 2권 '청와대 시절' ▷성장 과정과 군인 시절'대통령 퇴임 후 일들을 담은 3권 '황야에 서다' 등 총 세 권으로 구성됐다.
▶"최태민, 박근혜 업고 많은 물의…10'26 후 군부대 격리"
전두환 전 대통령이 10'26 사건 직후 박정희 정권에서 각종 비행을 일삼았던 최순실 씨의 아버지 최태민(1912~1994) 씨를 전방 군부대에 격리 조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 대통령은 "10'26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영애 근혜 양과 함께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 등을 주도해왔던 최태민 씨를 상당 시간 전방의 군부대에 격리시켜 놓았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최 씨에 대해 "그때까지 (박)근혜 양을 등에 업고 많은 물의를 빚어낸 바 있고 그로 인해 생전의 박정희 대통령을 괴롭혀 온 사실은 이미 관계기관에서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며 "최태민 씨가 더 이상 박정희 대통령 유족의 주변을 맴돌며 비행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격리를 시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전 전 대통령은 그러나 "최 씨 행적을 캐다 보면 박정희 대통령과 그 유족의 명예에 큰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
전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나의 이러한 조치가 근혜 양의 뜻에는 맞지 않았을지 모른다"며 "그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국봉사단 등의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왔지만 시대 상황에 비춰볼 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10'26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달된 '뭉칫돈'의 액수와 성격도 밝혔다. 회고록에 따르면 10'26 직후 당시 합동수사본부는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 방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금고를 발견, 9억5천만원 상당의 수표와 현금을 찾아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자금이었다는 권숙정 비서실장 보좌관의 진술에 따라 이 돈은 전액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 전 대통령은 "얼마 후 박근혜 씨가 10'26 진상을 철저히 밝혀달라는 부탁과 함께 내게 수사비에 보태달라며 3억5천만원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박정희 지우기'에 나서는 등 배신했다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 "'비판적 계승자'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배신했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고 강하게 부인하면서 오히려 유족을 예우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직 수행 어렵다고 봤다…지원 요청 거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대권 도전 의지를 보이며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전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역량으로는 무리라는 판단에 대권의 꿈을 접으라는 뜻을 전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회고록에 따르면 2002년 2월 당시 이회창 총재가 이끌던 한나라당을 탈당해 3개월 뒤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박근혜 의원은 대권 도전을 시사하며 전 전 대통령에게 지원을 부탁했다.
전 전 대통령은 "박근혜 의원은 내게 사람들을 보내 자신의 대권 의지를 내비치며 힘을 보태줄 것을 요청해왔다"면서 "나는 생각 끝에 완곡하게 그런 뜻을 접으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박 의원이 지닌 여건과 능력으로는 무리한 욕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면서 "박 의원이 대통령이 되는 데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봤고, 실패했을 경우 '아버지를 욕보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전하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그해 12월 19일에 실시된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전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나의 이러한 모든 선의의 조치와 충고가 (박근혜 전 대통령) 고깝게 받아들여졌다면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노태우가 나에게 직선제 반대하는 모습 연출하라 요구"
전두환 전 대통령은 6'29 선언을 준비할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직선제 개헌을 건의할 테니 크게 노해 호통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직선제를 비롯한 민주화 조치를 극적으로 수용하고 이에 반대하는 전 전 대통령에 강력히 반발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최대한 높이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전 전 대통령의 주장이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1987년 6월 17일 오전 10시 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노 전 대통령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렀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당시 상황에 대해 "나는 마주 앉은 노태우 대표에게 먼저 긴 설명 없이 국민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직선제 수용을 전제로 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기술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일언지하에 반대했다고 전 전 대통령은 밝혔다.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직선제 개헌에 반대했다는 것. 첫째 민정당이 4'13 조치에 따라 호헌을 주장해오다 당론을 바꿔 지금까지 내각책임제의 장점을 홍보해왔는데 이제 다시 직선제를 받는다고 하면 민정당 내부를 설득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두 번째는 직선제 아래서 과연 승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전 전 대통령은 직선제로 해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설득했다고 한다.
이틀 뒤 6월 19일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별관에서 다시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직선제 수용 지시를 따르겠다면서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직선제 수용을 포함한 민주화 조치를 건의한 것으로 하고 전 전 대통령이 크게 노해 호통치는 그림을 연출해달라는 것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고심 끝에 노 전 대통령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6월 22일 그를 다시 청와대로 불렀다. 전 전 대통령은 그날 "나더러 반대해달라고 한 것은 없던 일로 하자. 그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고 위선적인 처사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는데 나중에 진실이 알려지면 훗날 나와 노 대표를 국민이 어떻게 볼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며 노 전 대통령을 타일렀다고 했다.
이날 저녁 전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다시 불러 청와대 별관에서 만찬을 함께하며 노 전 대통령에게 6'29선언의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해 전권을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6'29선언 전 27일 청와대 별관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자필로 써온 발표문을 낭독했다고 전 전 대통령은 기술했다.
전 전 대통령은 "재야에 밀리는 상황에서 발표하면 빛이 나지 않으니까 민헌국(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 주최하는 대행진 행사의 추이를 지켜보고 일요일인 28일을 하루 더 지켜본 뒤 조용하게 되면 29일 극적으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제6공화국의 문을 연 6'29선언 발표일은 이렇게 정해졌다고 전 전 대통령은 증언했다.
▶"최규하, '대통령직 승계' 과정 안 밝혀 아쉬움"
전두환 전 대통령은 30일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이 10'26 사건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과정과 10개월간의 재임 기간에 대해 끝까지 침묵한 채 해명하지 않아 아쉬웠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은 "10'26 이틀 뒤인 1979년 10월 28일 최 전 대통령과 처음 독대했고 이후 최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까지 최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거나 통화한 일은 모두 70회나 된다"고 적었다.
그는 최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 승계와 재임 기간 활동에 대해 끝까지 함구한 데 대한 개인적 아쉬움도 털어놨다. 그는 "내가 12'12 때 겁박했다거나, 그 어른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몰고 갔다거나 하는 음해를 받는 사실에 대해 속 시원한 해명 말씀 없이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다"고 적었다.
전 전 대통령은 "그 어른이 자신의 후임으로 나 전두환을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그분의 자유의사에 의한 통치 차원의 결정이었다는 사실과 그 어른이 사임 여부와 사임 일정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최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 역사적 사실의 전모와 진실을 당당히 밝혀주시기를 바라는 내 마음은 간절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최 전 대통령은 이미 병환이 깊어져 있었다고 전 전 대통령은 회고했다.
연합뉴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