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으로 산다는 것/신병주 지음/매일경제신문사 펴냄
개천(開川)공사가 시작됐다. 땅을 파서 물길을 내 중랑천으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지도자'는 업무시간을 정해 지나치게 이른 새벽과 늦은 밤에는 공사를 중지하도록 지시했다. 작업시간이 지켜지지 않을 때는 감독관을 문책했다. 공공 의료'보건기관에 미리 약을 만들고, 임시 치료소를 설치해 공사 탓에 병이 난 사람이 바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공사에 동원됐다가 희생된 사람을 위해 그 집안에 포상하고 세금 등을 면제했다.
청계천 공사를 시작할 당시의 이야기다. 고가도로 아래에 있던 청계천을 복원하던 2003년 상황이 아니다. 1412년의 기록이다. 인공하천을 만든 지도자는 조선 3대 왕인 태종 이방원이다. 정몽주와 정도전을 제거하고, 왕자의 난을 거쳐 왕위에 오른 그의 치수사업 덕분에 도읍 한양의 홍수 피해가 대폭 줄었다고 한다. 600년 전 이야기임에도 현재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과 지도자의 리더십 부재가 낳은 국가적 혼란 상황에서 조선시대 임금의 리더십을 다룬 책이 나왔다. 사학자 신병주 교수가 쓴 '왕으로 산다는 것'이다. KBS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했고, KBS 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과 EBS '신병주의 역사여행' 진행을 맡아 역사 대중화에 힘써온 인물이다.
책은 조선시대 왕의 발자취를 소개하며 리더십이 무엇인지 묻고, 국가 경영의 답을 제시한다. 500년 이상 장수한 조선왕조는 27명의 왕이 집권했다. 책은 왕을 중심으로 500년간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들과 왕실'관료 등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승계 과정, 혼인관계, 참모, 내치와 외교 등 왕의 주변 인물이나 주요한 사건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흥미로운 점은 공과가 널리 알려진 왕을 포함해 27명의 왕 대부분을 언급하고 조명한 것이다. 지도자의 정치 역량이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도 기술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조선의 왕은 삼국이나 고려의 왕과 달리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지 못했다. 왕권을 강화하려고 할 때마다 신권의 저항을 받았고, 삼사(三司)와 같은 견제장치가 마련되면서 제도적으로도 제한을 받았다. 저자는 왕권과 신권의 균형이 조선왕조가 장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두 권력의 축이 때론 갈등하고, 때론 조화하면서 중심을 유지했던 덕분에 리더십이 빛나는 군주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것.
27명의 왕은 모두 다른 환경에서 즉위했다. 시대가 군주에게 요구하는 것도 달랐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해야 했던 시기, 집권을 정당화해야 했던 시기, 체제를 정비해야 했던 시기, 개혁이 요구됐던 시기, 외침에 맞서거나 전란의 위기에서 벗어나야 하던 시기 등 조선의 왕들에게는 안정기와 혼란'격동기를 막론하고 자신의 정치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던 시기가 있었다. 최고 권력자로서 그들이 내린 결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조선 왕조에서 왕으로 추존되지 못한 2명의 왕 가운데 광해군의 경우, 공과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평가도 갈린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을 버리고 개성-평양-의주로 피란했던 선조 대신 분조를 이끌었던 광해군은 폐모살제(廢母殺弟)로 성리학의 도를 버린 패륜 군주라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대동법 시행, '동의보감' 간행, 중립외교 등은 그를 연산군과 다르게 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준설한 지 300년이 지나도록 본격적인 준천이 이뤄지지 않아 하수 배출 기능을 잃었던 청계천 공사는 영조대에 이르러 다시 진행됐다. 공사기간은 57일, 21만5천 명이 동원된 대규모 국책공사는 일자리를 만들고 도시 환경을 정비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정책으로 기록됐다. 이른바 한국판 '뉴딜정책'이다. 영조는 청계천 준천사업을 균역법과 함께 '자신의 재위기간 동안 이룬 가장 중요한 사업'이라고 자부했다고 한다.
책은 수원 화성 건설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다룬다. 수원 화성은 역사성과 건축미를 동시에 인정받아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사도세자의 복권과 추숭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지만, 책이 전하는 화성 축성의 의미는 알려진 것보다 크다. 화성 축성은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추숭의 단계를 넘어 군사도시, 자급자족 도시, 농업과 상업의 중심도시로 만들려는 정조의 의지가 구현된 것이라고. 이 외에도 소상인의 상업권을 확보한 신해통공은 경제민주화의 선구적 형태라고 이야기한다.
조선왕조의 500년은 쇄국과 개화라는 근대의 격랑에 밀려 막을 내렸다. 왕조시대는 막을 내리고 '민주공화국'이 만들어졌지만 리더십의 부재로 국정상황은 위기를 맞았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고스란히 남긴 폐해는 '그때보다 지금, 나은 게 무엇인지'를 묻게 한다. 조선 왕이 보여준 정책'도덕성'포용력이 새로운 지도자 선출을 앞둔 지금, 시대의 난제를 풀 답이 되어줄 수 있을지 살펴보자.
448쪽, 1만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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