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한국경제/김영욱 지음/이다미디어 펴냄
"한국경제는 '살길'이 아닌 '침몰의 길'로 가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경제학 박사 김영욱은 "한국의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길로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우리는 당시 일본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이 부족하다. 일본과 같은 상황을 맞이한다면 그 고통과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고 말한다. 뻔히 알면서도 자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운명일까. 해법은 없을까? 이 책은 지은이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쓰기 시작한 칼럼을 묶은 것이다. 많은 칼럼 중에서 여전히 우리나라 경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는 데 유효하다고 생각되는 118건을 추렸다.
◇기업가 정신 부재'저출산…경제 활력 감소
'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한국 경제에 활력을 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고 엉뚱한 길을 가고 있다. 지은이는 그 이유를 대략 두 가지로 꼽는다.
하나는 도약하겠다는 기업가 정신과 경제 활력이 대폭 사라졌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대화와 타협보다는 갈등과 대립이 더 심해졌다는 점이다. 활력이 줄어든 것은 저출산과 고령화 탓이 크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는 청년실업이 늘고, 복지지출이 증가하며, 소비와 투자가 감소한다.
갈등과 대립이 심해진 것은 정치 시스템과 정치 리더십이 부족한 탓이다. 조정과 협력보다는 갈등을 더욱 조장하는 우리 현실 정치가 문제라는 것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던 주요 원인도 이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일본이 걸었던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구조개혁 총대 메는 용감한 지도자 필요
책은 구조조정과 구조개혁의 절박함을 피력한다.
'구조개혁의 성공 여부에 우리 운명이 달려 있다. 지금처럼 희망사항만 나열해서는 안 된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국민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역대 정부는 고통 분담을 호소하는 대신 '포퓰리즘'적으로 문제에 접근했다. 정권에 부담이 될 '고통 분담'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또 경제를 살리기 위해 확장적 재정 및 통화정책을 강조한다. 저성장이 고착화되면 국민들은 자신감을 잃기 마련이다. 국민 다수가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면 투자와 소비가 줄어들고, 경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확장정책이 필요하고, 구조조정과 구조개혁에 따른 경제 충격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재정지출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재벌개혁과 관련해 이 책은 '재벌개혁이나 경제민주화가 규제 일변도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규제를 하더라도 재벌의 숨통을 틔워주면서 하자는 것이다. 또한 2세, 3세 승계는 인간의 본성인 만큼 재벌들이 원활하게 승계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하자고 강조한다. 대신 양극화 완화, 불공정 거래의 단절 등 우리 경제의 만성적 골칫거리를 재벌이 해결하도록 대타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일본 '잃어버린 20년'보다 더 심각한 청년실업
일본도 청년실업(25~29세)이 심각했다. 장기침체가 시작된 1990년대부터 청년실업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2~3%에 불과했던 청년실업률이 1995년 4.3%, 2000년 6.2%로 높아졌다. 2012년에는 6.6%, 2016년에는 6.1%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하다. 2014년 25~29세 청년실업률은 8%대, 20~24세는 10%대다. 청년실업률이 갑자기 높아진 원인은 첫째 청년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20~29세 인구는 1994년부터 줄었지만 2년 전부터 오히려 늘고 있다. 1999년 이래 줄곧 줄어들던 25~29세 인구가 2016년 늘기 시작한 것은 베이버부머(1955~1963년생)들의 2세가 청년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앞으로 4, 5년간 연평균 20만 명의 청년이 고용시장에 나올 전망이다.
청년실업률 상승의 둘째 원인은 정년 연장이다. 지은이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정년 연장은 불가피하지만,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하필 청년인구가 늘어나는 시점에 정년이 연장되면서 일자리 공급이 급격히 줄었다"고 진단한다.
일본의 청년실업 문제는 장기실업자 문제로 번졌다. 청년기에 직업과 관련한 훈련과 경험을 쌓지 못한 세대가 장기적으로 '경제 낙오자'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나 '일자리 숫자를 늘리기 위한 비정규직 확대정책은 양극화를 초래하고, 저출산의 원인이 될 뿐'이라며 '답은 정규직 노조와 대기업의 양보를 바탕으로 하는 노동개혁'이라고 말한다.
◇한'중'일 가운데 한국 기업 경쟁력이 꼴찌
이 책은 한국 기업은 위기에 빠졌으며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2014년 상장사 매출 증가율은 마이너스였고, 영업이익은 더 많이 감소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만 그런 게 아니다. 나머지 기업들 상황도 대부분 나쁘다.
이를 두고 '세계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상장 제조업체는 매출액이 늘었다. 유독 한국만 줄었다.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 3국 중 꼴찌다. 그 전에는 일본이 꼴찌였다. 그러나 2013년부터 역전됐다. 그해 초부터 본격화된 아베노믹스 영향이 컸다. 일본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면서 한국이 꼴찌로 전락한 거다. 우리는 경제위기라는 말을 하면 흔히 가계부채를 이야기하지만, 심각한 것은 기업부채다. 회생이 불가능한 부실 기업이 부지기수다. 서둘러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좀비 기업을 털어내야 새 기업이 나오고, 유망 기업이 성장한다. 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국민들의 불안감과 사기가 꺾인다. 내수 진작이라는 미봉책에만 매달린다면 장기 불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복지사회로 가려면 증세 논의해야
우리나라 경제는 이제 3% 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다. OECD 추계에 따르면 2031년이면 잠재성장률은 1%대로 급락한다. 그 이후에는 제로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OECD뿐만 아니라 한국개발연구원과 한국조세재정연구원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사태는 불가피해 보인다.
책은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복지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재원이다. 지금 수준의 복지만으로도 2034년이면 국가 재정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도 복지를 늘리자면 해법은 증세뿐이다.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는 OECD 평균보다 세금을 훨씬 적게 내는 저부담 국가다.(OECD 국가 평균 34%, 한국 24%)
지은이는 '우리나라의 복지 확대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세대 간, 계층 간) 갈등 해소의 자원이 되는 만큼 복지가 오히려 성장을 촉진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책은 '경제가 어려울 때, 저성장일 때 불평등이 심화되고 불만이 커지는 만큼, 이런 때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면서 '국민들에게 증세를 설득하자면 포퓰리즘 복지, 비효율적 복지, 누수되는 복지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464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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