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누굴 원망하랴

"국민을 이길 수 있는 정치인이나 대통령이란 없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9월 7일 오후 2시 청와대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만났다. 노 대통령은 영수회담으로 그해 6월부터 제안한 대연정(大聯政) 등 정국 돌파의 길을 찾으려 했다. 박 대표의 태도는 단호했다. 국민만 바라보고 갈 것을 주문했다.

"국민들의 걱정이 곧 대통령의 걱정이 되며 24시간 노심초사하는 자리입니다. 무한대의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남들은 권력자라 하겠지만 무척 외로운 자리입니다. 대통령마다 그 시대에 져야 할 책임이 있으므로 노 대통령께서는 노 대통령 시대의 사명을 잘 생각하고 마무리하셔야 합니다."

박 전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믿음은 다시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알려진 터다. 그런 박 전 대통령이 바로 국민의 힘에 떠밀려 청와대를 떠난 것도 모자라 31일 구속됐다. 65년의 삶이 이렇게 될지 자신은 물론 국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것도 40년 세월, 누구보다 믿었던 최순실이라는 가장 가까운 인물의 갖은 비행(非行)으로 비롯됐으니 무슨 운명인가. 되돌아보면 유난히 우여곡절 많았던 삶이었다.

1952년 태어나 1964년 12세 소녀 시절 부모 손을 잡고 들어간 청와대에서 10대를 보냈다. 1974년 프랑스 유학 시절, 급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에 아버지를 도우며 보낸 청와대 생활과 1979년 아버지마저 총탄에 잃으며 보낸 20대였다. 이후 오랜 침묵과 은둔의 30대, 1997년 정치 입문과 1998년 대구 달성에서의 국회의원 당선으로 시작된 정치의 40대였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로서 위기의 당을 지키고 잇따른 선거 승리로 정치 입지를 굳힌 50대.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 지고 깨끗한 승복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고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시작한 60대였다. 2013년, 10대와 20대를 보낸 청와대에 33년 만에 들어갔지만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최순실의 검은 그림자는 그를 그냥 두지 않았고 결국 사상 첫 탄핵 대통령도 모자라 구속 대통령으로 전락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제 누구를 탓하랴. 노 전 대통령에게 주문했던 국민을 무섭게 생각하고 또 두렵게 여기지 못한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누굴 원망하랴. 이 모든 것이 국민의 뜻임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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