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토론이 끝날 무렵, 질문을 받았다.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으시나요?"
물론, 내가 작가라는 것을 이미 알고 던진 질문이었고, 전업 작가의 독서량에 대해 궁금한 것 같았다. 필자는 평소에 읽는 책의 숫자를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전달했다. "한 달에 사오십 권 정도…."
일 년도 아니고 한 달에 사오십 권 정도라는 말에 질문을 던진 사람도, 옆에 있던 사람도 모두 놀라는 눈빛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얘기가 이어졌다. 뭔가 보충 설명을 하지 않으면, 오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거짓말을 한 것도, 부풀린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필자의 대답을 무척 신기해하며 한편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달에 사오십 권을 읽는다는 필자의 대답은 과연 진실일까?
◆꼭꼭 씹어 먹는 맛과 골라 먹는 재미
책을 읽는 목적은 '간접 경험을 통한 인격 성숙' '소통과 배려를 통한 인성 함양' '즐거움을 통한 휴식' 등 다양하다. 물론 이것은 작가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지만, 작가는 이런 것들을 누릴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다. 마감이라는 시간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의 책 읽기는 독자를 위한 생산 준비 활동, 즉 업무의 일부분이다.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책을 읽는다. 필자의 경우,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적어도 100권 이상을 참고하지만, 100권 모두를 꼼꼼히 읽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책을 완독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필요한 부분만 읽더라도 전체적인 개념을 머릿속에서 정리'분류'재조합하여 참신한 글감을 얻는 데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같은 분야의 여러 책을 읽을 때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어떤 분야든 분야마다 핵심적인 책, 고전으로 불리는 기본서가 있다. 이런 책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생각보다 숫자도 많지 않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어떤 분야든 5권 이내로 압축할 수 있다. 기본서를 읽을 때는 꼭꼭 씹어 먹듯 꼼꼼히 읽어야 한다. 이렇게 읽어야 튼튼한 기초를 쌓으며 전체적인 윤곽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만약, 이렇게 읽었는데 전체적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 여러 번 다시 반복해야 한다. 생소한 분야는 자기 것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개념이 잡힐 때까지 반복하고 용어가 익숙해질 때까지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기초를 다졌다면, 이제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만약 같은 주제에서 총 100권을 골랐다면, 기본서를 제외한 95권의 책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잡지를 보듯 대충 훑어봐도 상관없다. 같은 분야의 책이기 때문에 비슷한 내용이 자주 나타난다. 이미 읽었던 내용이나 부실한 내용은 과감히 넘기고, 참신하거나 관심 가는 부분에서 속도를 줄이고 꼼꼼히 읽는다. 이렇게 속도를 조절하면서 읽다 보면 다양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작업이 모두 끝나고 뒤를 돌아보면, 결국, 한 권 전부를 꼼꼼히 읽은 책보다 일부분만 읽고 대충 넘겨본 책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특정 주제에 관한 내용은 체계적이고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한 분야를 완벽히 이해하고 나면, 그 분야에 관한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래서 필자가 한 달에 사오십 권의 책을 읽는다는 말은 부풀린 것도 거짓도 아니다.
기억을 잠시 더듬어 보면, 우리는 학창 시절에 책 읽는 방법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 어쩌면 공부가 독서라고 생각하며, 무턱대고 읽기만 했다. 무슨 책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버릇! 이런 습관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아마 많은 사람이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한국 대학생은 연간 16권, 하버드대 학생은 연간 98권, 옥스퍼드대 학생은 연간 103권의 책을 읽는다는 통계를 보았다. 평균적으로 한국의 대학생보다 하버드대나 옥스퍼드대 학생의 독서량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차이가 나는 까닭도 같은 원인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책만 인정하지만, 하버드대'옥스퍼드대 학생은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어도 다 읽은 것으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완독을 너무 고집할 필요는 없다. 책은 완독이 아니라 이해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송나라 때 학자인 정자가 '如讀論語 未讀時 是此等人 讀了後 又只是此等人 便是不會讀'라는 말을 남겼다. 풀어보면 "논어를 읽기 전이나 읽은 뒤나 똑같다면, 그는 논어를 읽지 않은 것이다"는 뜻이다. 결국, 책을 읽어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읽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보자. 만약, 책에서 단 한 줄만 읽고도 깨달음을 얻었다면, 누구도 그 책을 읽지 않았다고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보다 한 줄을 읽더라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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