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진학 성광고 출신 신재호 군 어머니 사연

"아이를 믿었고, 학교를 믿었을 뿐입니다"

척추장애 홀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에 합격한 신재호 군이 2일 오후 어머니 소수연 씨의 손을 꼭 잡고 모교인 대구 성광고등학교를 찾아 공부했던 교실을 둘러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gmaeil@msnet.co.kr
척추장애 홀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에 합격한 신재호 군이 2일 오후 어머니 소수연 씨의 손을 꼭 잡고 모교인 대구 성광고등학교를 찾아 공부했던 교실을 둘러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gmaeil@msnet.co.kr

임대주택서 서른 여덟에 유복자

빨래집게 보며 "A"라 읽던 아이

가난에 학원은커녕 책도 못 사줘

중학교 진학후엔 영'수 못따라가

대학생 멘토 도움 받더니 성적 쑥

아들 존중하며 항상 "장군" 애칭

비결? "아이 믿었고 학교 믿었죠"

지난 2월 8일 성광고등학교 졸업식장. 본 행사가 열리기 전 무대에 한 어머니가 올라오자 졸업생과 학부모들로 가득 찬 강당이 일순 조용해졌다. 자그마한 몸집에 등이 굽은 채 힘든 발걸음을 조심조심 옮겨 연단 앞에 섰다. 이날 졸업하는 3학년 신재호 학생의 어머니 소수연(58) 씨였다. 박운용 성광고 교장은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하기 전에 이 어머니를 먼저 모셔 '훌륭한 어머니상'을 전달했다. "귀하께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헌신적인 사랑과 관심으로 아들을 보살펴 탁월한 학업 성적과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수행하는 데 공헌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은 주위의 모든 교사와 학생들에게 감동이 되고 귀감이 되어 존경의 마음을 이 상패에 담아 드립니다."

이날 졸업하는 신 군은 척추장애인이며 기초생활수급자인 홀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서울대 공대 컴퓨터공학부에 합격했다. 학교 측은 힘들고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아들을 잘 뒷바라지한 어머니의 헌신을 헤아려 처음으로 이 상(賞)을 마련했다. 어머니는 난생처음 강당을 울리는 박수를 받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성광고, 처음으로 '훌륭한 어머니상'

지난 28일 찾은 대구시 북구 산격동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 신 군이 태어날 때부터 거주한 12평짜리 집은 낡고 비좁았다. 책상 하나가 겨우 들어간 신 군의 방과 어머니가 거처하는 거실 겸 주방이 공간의 전부였다.

전라도 순천이 고향인 어머니 소 씨는 19살 때 대구로 왔다. 부모님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무작정 고향을 떠나 대구 방직공장에 취직했다고 한다. 생면부지의 도시에서 척추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몸이 아파 공장 일을 오래하지 못하고 온갖 행상을 다녔다.

작은 키에 짐을 머리에 이고, 리어카를 끌고 장사를 해도 많이 굶었다고 했다. 그러다 한 사람을 알게 됐지만 술을 좋아해서 얼마 안 가서 죽었다. 소 씨도 모르게 아이가 '선물'처럼 찾아왔고, 서른여덟의 나이에 유복자 재호를 낳았다. 세상 혼자였던 소 씨에게 아이는 전부였고 "정신을 바짝 차려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재호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총명했다. 소 씨는 "책을 사주지도 못했지만 한글을 깨쳤고, 빨래집게를 보고 A라고 말하더라"면서 "주변에선 영재교육을 시키라고 권유를 했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에 마음이 아팠다"고 회고했다. 나중에는 그런 이야기가 듣기 싫어 사람을 피했다고 했다.

재호는 초등학교 때 공부를 곧잘 했지만 중학교에 와서 벽을 만났다. 학원 근처에 가보지 않고 시험을 치르니 수학, 영어에서 한계를 보였다. 그러다 성광중과 경북대 학생들과의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성적은 쑥쑥 올랐다. 이러한 성적은 고교에 와서도 이어져 전교 2등으로 졸업했다.

◆"나를 만들어 준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

신 군은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원동력은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나를 크게 될 사람이라면서 항상 높여주셨다. 그것이 아마 내가 중학교 때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소 씨는 한 번도 자식을 "야"라고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아프지 않고 큰일을 하라는 의미로 '장군'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아이는 바람대로 씩씩하게 자라났고, 누구에게도 주눅이 들지 않고 장군처럼 우뚝 섰다.

소 씨는 일자리를 구하려고 워드 프로세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컴퓨터를 마련했다. 당시 4살인 신 군이 컴퓨터를 더 좋아했다. 아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판을 만지작거렸고, 6학년 때 워드 1급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신 군이 처음 컴퓨터공학으로 진로를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 돈 잘 버는 의사를 하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럴 때에도 어머니는 내 뜻을 존중해 주시고, 오히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공에 대한 단점을 집어주면서 내 길을 갈 수 있도록 북돋아주셨다." 신 군은 자신이 어긋나지 않고 반듯하게 자란 것도 어머니 덕분이라고 돌렸다. "임대아파트 동네에 노는 친구들이 많았다. 여기에 휩쓸려 일탈을 하지 않도록 도덕적 기준이 되어 준 분이 어머니였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소 씨는 지난해 4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방치한 고혈압이 원인이었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앞둔 신 군에게도 시련이었다. 교내 기숙사 생활을 하는 신 군은 아픈 어머니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다고 했다. 어머니는 수술과 몇 달의 입원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지만 몸의 마비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더욱 불편한 몸으로도 아이를 위해 가끔 학교를 찾았다. 그럴 때마다 신 군은 스스럼없이 어머니를 반겼고, 꼭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교사들에게도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용환성 성광고 진학부장은 "몇 차례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손을 붙잡고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은 큰 울림이 되었다"면서 "마음 말고 드릴 게 없다면서 한 줌의 볶은 우엉차를 내밀었을 때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신 군은 원하던 2017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에서 컴퓨터공학부에 합격했고, 두 모자는 발표를 확인하고는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아들아 고맙다." "엄마 제가 더 고마워요."

어머니 소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자식을 믿었고, 학교를 믿었을 뿐입니다."

키 128㎝의 어머니가 한없이 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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