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논설위원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MB 정부 때로 당시 현인택 통일부장관을 초청해 남북관계를 주제로 발제'토론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참석자들의 관심사는 개성공단 5년 성과였다. 자연스레 딱딱한 발제보다는 개성공단 운영의 뒷이야기를 묻고 답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가졌다.
교수 출신의 현 장관은 "통일부 폐지"를 주장할 정도로 대북 강경 입장을 가진 매파다. 야당은 "외교부에 가야 할 사람이 통일부장관이 됐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개성공단을 보는 시각만큼은 기존의 평가와는 달랐다. 나름대로 개성공단 효과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 장관이 주목한 부분은 남북 경제 협력 모델이 아니었다. 공단에서 일하는 5만 명의 북한 노동자였다. 이들 주민들이 앞으로 북한 체제 변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이른바 '지렛대론'이다. 개성공단이 자본주의 학습장이 된다면 전체 주민의 인식 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초코파이나 라면, 여성 노동자의 옷차림새, 화장한 얼굴 등 사소한 변화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참석자의 질문은 '개성공단의 볼모 가능성'에 집중됐다. 2009년 3월 현대아산 직원이 '탈북 책동과 체제 비난'을 이유로 137일간 억류된 직후여서 우려는 더 컸다. 현 장관은 '예측 불가'라고 답했지만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는데 동의했다.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살해된 김정남의 시신이 그저께 북한에 넘겨졌다. 억류자 석방 등 6개 항에 합의한 결과다. 말레이 경찰은 "법적으로 김정은도 친척"이라며 이와 별개로 계속 수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북한의 '인질 외교'에 두 손을 든 것이다. 말레이 정부는 평양주재 대사관도 폐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건 초기 말레이 정부의 합리적인 대응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은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외교 관계 단절 가능성까지 엿보였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갈무리되자 부패 의혹으로 궁지에 몰렸던 나집 총리와 극악무도한 김정은이 승자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면 합의에 대한 의심도 짙다.
어떻든 인질극 실험무대였던 개성공단 사례를 간과한 말레이 정부가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 패착이지만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먹혀든 또 하나의 사례다. '제 버릇 개 못 준' 북한이나 닭 쫓다가 지붕만 쳐다보게 된 우리 정부의 무능함만 확인한 결말이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포항 찾은 한동훈 "박정희 때처럼 과학개발 100개년 계획 세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