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 총리 부정부패 유튜브 통해 고발
당국 '反부패재단' 나발니 대표 체포
크렘린은 철부지 선동으로 보지만
푸틴 대항마 없는 내년 대선 새바람
올 3월 초 러시아 야권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는 유튜브에 영상을 하나 게시했다. 현 총리 메드베데프의 부정축재를 고발한 이 50분짜리 영상은 지금까지 1천600만이 넘는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다. 영상이 촉매가 되어 지난 3월 26일 러시아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발했고, 나발니를 포함한 참가자 다수가 체포되었다.
슬쩍 훑어만 보려던 영상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워서 50분간을 꼼짝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야 했다. 나발니는 직접 내레이션을 맡아 메드베데프의 부정축재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모스크바 근교의 대저택, 부모 고향의 여름 별장과 거대 농원, 남부 흑해 연안의 와이너리, 소치 근교 초호화 겨울 별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고택, 2대의 요트, 심지어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성채와 그에 딸린 와이너리까지, 메드베데프의 숨겨진 재산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나발니가 밝힌 이 부정축재의 도식은 다음과 같다. 자산의 명목상 소유주는 메드베데프의 대학 동창과 친인척 등이 대표로 있는 자선재단들인데, 거액의 부동산 매입자금은 유수의 재벌들이 이들 재단에 기부한 것이다. 메드베데프에게만 자선을 행하는 이 기괴한 자선 단체들을 비꼬면서 나발니는 푸틴을 포함한 권력자 대다수가 유사한 방식으로 비리를 저지른다고 고발한다. 그리고 내년 대선에 직접 출마해 새로운 러시아를 만들겠다는 출사표로 동영상을 마무리 짓고 있다.
나발니가 대표로 있는 비영리기구 '반(反)부패재단'은 이전부터 인터넷을 활용해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고발해왔다. 주 공략 대상은 인터넷 환경에 노출이 잦은 젊은 층들이다. 방송과 신문 등 주류 언론이 푸틴의 통제하에 있는 러시아에서 이는 효율적이고도 유일한 저항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메드베데프 관련 영상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당사자의 해명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별다른 대응 없이 메드베데프가 병가를 내고 휴가를 떠나자 나발니는 저항의 의미로 거리 집회를 제안한 것이다. 당초 집회를 허가했던 당국은 사안이 심상치 않자 이를 즉각 취소했고, 나발니는 사유도 밝히지 않고 평화 집회를 불허한 것은 헌법 위배라며 시위를 강행했다. 집회현장으로 가던 나발니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 시위 참가자 수백 명이 러시아 전역에서 체포되었다. 나발니 재단은 체포의 불법성을 유럽 인권위원회에 제소할 뜻을 밝혔고, 체포된 사람들의 법적 대처 매뉴얼 영상도 게시했다.
그렇다면 일견 무모하고도 용감해 보이는 이 나발니는 도대체 누구인가? 경제학과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이자 40세의 젊은 활동가인 그는 2000년대부터 반정부 운동을 해왔다. 몇 번이나 가택 연금에 처해졌고 아파트와 사무실도 여러 차례 압수수색을 당했다. 그럼에도 그는 활기차고 달변에 유머러스하다.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는 주류 언론의 철저한 외면에도 불구하고 30%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의 소통 방식은 크렘린 안에서 비밀스럽게 행해지던 기존 정치권과는 다르다. 반정부 활동가가 종종 서방의 스파이로 매도되는 것을 잘 아는 그는 인터넷을 통해 러시아 내에서만 재단 후원금을 받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노출되기에 젊은이들은 그에게 열광하는 것이다.
현재 크렘린에서는 나발니 영상을 철부지들을 선동하는 포퓰리즘에 영합한 허구로 일축하고 있지만 더 이상 그를 내버려 두진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폐쇄된 나발니 재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초부터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푸틴의 대항마로 불리던 넴초프가 2015년 암살된 이후 별다른 대안이 없던 러시아에서 나발니가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것은 분명하다.
2018년 러시아는 월드컵이라는 세계인의 축제와 대선을 앞두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선전하고 동유럽 각국에 친러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제적 입지를 굳히고 있는 푸틴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 내부의 바람에 어떻게 대응할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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