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상처, 세월이 흐르면 보석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구릿빛 피부와 아담한 체구를 가진 스테파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그녀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스테파니는 아들이 살아 있으면 지금쯤 한창 청춘을 만끽하고 있을 청년이었을 터인데, 5년 전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저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침착하게 당시의 사건을 들려주었다.

스테파니의 아들이 막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어느 날, 경찰서에서 아들이 고층 빌딩에서 떨어졌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경찰은 아들이 자살한 것으로 처리하고 사건을 급히 일단락 지었다. 스테파니는 충격에 빠져 거의 실신 상태에 이르렀고, 그 와중에도 아들이 자살했다는 수사 결과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들은 평소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높은 건물이나 장소에는 절대 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이 투신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누군가에 의한 타살이라고 추정하고, 경찰에 재수사를 신청했지만, 경찰의 무성의한 반응으로 오히려 마음만 더 상했다.

스테파니는 '아들과 내가 흑인이 아니고 백인이라면 경찰들이 이렇게 사건을 가볍게 처리하지는 않았겠지'라는 생각을 하니 인종차별 당하는 억울함까지 몰려 왔다. 한순간에 사랑스러운 아들을 떠나 보낸 상실감과 공포 속에 죽어갔을 아들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는 고통과 경찰에 대한 분노로 수많은 날을 눈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테파니는 자신이 아무리 슬퍼해도 아들은 돌아올 수 없고, 잠시 후면 자신도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인생임을 깨달았다. 아들을 만나기 전까지 자신에게 남겨진 이생의 시간을 아들 몫까지 하며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스테파니는 학교에 상담교사로 복직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미처 귀 기울이지 못했던 아들의 속사정을 듣는 심정으로,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아이들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로부터 매일 자신이 많은 위로와 사랑을 받고 있어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했다. 세월이 그녀를 치료하고 있었다.

세월호가 3년 만에 땅 위로 올라와 누웠다. 지상에서 쏟아부은 수많은 눈물과 회한을 머금은 탓인지 선체는 상처로 얼룩덜룩 멍들어 있었다. 앞으로 수개월에 걸친 작업을 통해, 그동안 부풀어진 의혹도 풀어야 하고, 꼬일 대로 꼬여버린 양극화된 민심도 풀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미수습자들의 유해를, 수년째 장례를 못 치르고 있는 유가족의 품에 안겨줄 수 있다면, 3년을 자괴감과 분노로 함께 울었던 온 국민들에게도 큰 위안이 될 것이다.

상처는 세월이 흐르면 보석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세월이 얼마나 흘러야 세월호의 상흔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계절이 몇 번 더 바뀌어야 그 고난 속에서 영글어진 진주 같은 교훈을 꺼내 들 수 있을까? 이번 선체 조사를 통한 속 시원한 진실 규명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 과정 없이는 불신과 원망의 찌꺼기로 뒤범벅된 세월호를 역사 속으로 편히 흘려보낼 수 없다. 또다시 유족들을 노란 리본이 흔들리는 목포항에서 통곡하게 해서는 안 된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국민들은 세월호를 마지막으로 배웅할 수 있고, 유족들도 남겨진 가족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세월호의 비통한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안전 불감증과 생명권보다 사익 치중에 시달리던 대한민국을 향해 세월호가 던져준 뼈아픈 교훈을 보석처럼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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