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수인번호 503

평양고등보통학교
평양고등보통학교'연세대(영문학)'보스턴대 대학원(철학박사) 졸업. 전 연세대 부총장. 현 태평양시대위원회 명예이사장

문교부 장관이던 나의 누님 김옥길

박근혜 전 대통령 성격에 대해 일러

"그 젊은 여자 되게 교만하더라" 충고

타고난 교만 탓에 탄핵'영어의 신세

대구를 굽어보는 팔공산에는 어떤 정기가 서리어 있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박정희를 비롯하여 전두환, 노태우가 다 팔공산의 정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박근혜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통령 중심제의 헌법하에서 정정당당하게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사람 아홉 중에서 넷이, 넓은 의미에서 '대구 사람들'이라면 팔공산을 성산(聖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박근혜는 나이 갓 스물이 되기도 전에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드디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리에 오른 박정희의 따님이었고, 그 아버지가 혁명 공약과 '2'27선서'를 포기하고 대통령에 출마하여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된 뒤로는 줄곧 '대통령의 딸'로 행세하였다.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 후덕한 '국모'로 만인이 사랑하던 그의 모친이 문세광의 총에 맞아 1974년의 8'15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비명에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아버님을 보살피는 'First Lady' 노릇도 훌륭하게 해냈다. 그의 아름답고 단아한 모습은 온 국민의 자랑이요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 '따님'이 새마음봉사단의 총재가 되고 그것이 전국적으로 그 운동을 전개하던 무렵 총재 고문으로 등장한 최태민이라는 사람을 우리는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저 사람은 누군가?"라고 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을 휩쓸었고, 이 운동의 총재인 박근혜는 전국을 누비며 심지어 초'중'고등학교의 머리가 허연 교장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효(孝)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때 그건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박근혜와 매우 가까운 사람이 내 주변에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고향 후배인 동시에 대학 후배인 최필립과 나의 대학 시절의 제자인 유정복이었다. 최필립의 아버지는 제헌국회의원선거 때 동대문에서 이승만 박사와 맞서 입후보했던 최능진인데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최 씨 일가는 엄청난 핍박을 받았다. 그는 외무부에서 근무하다가 박정희로부터 딸 근혜를 잘 돌봐주라는 분부가 있어 청와대에서 박근혜 뒷바라지를 하였고, 그의 충성심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10'26 뒤 그는 뉴질랜드 대사 등을 지냈지만 은퇴하고 돌아와 정수장학회를 맡아 그 장학회를 엄청나게 키운 것도 사실인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최필립이 살아 있었으면 오늘 박근혜가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요새도 가끔 한다.

유정복은 현재 인천광역시의 시장인데 학생 때는 모범생이었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김포군수로 나가기도 했다. 그가 정계에 투신하면서 박근혜와 가까워졌고 나를 찾아와 여러 번 증언하였다. 박근혜는 훌륭한 지도자라고, 그래서 나도 박근혜가 훌륭한 지도자라고 믿게 된 것이었다.

사실상 2012년 대선에서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5년 전의 일이다. 그때 안철수는 문재인에게 명분 없는 양보를 하였고 얼마 뒤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그가 정치에 대한 관심이나 의욕을 청산한 줄 알았다. 그러나 5년 뒤인 오늘 안철수는 변신(metamorphosis)하여 우리 앞에 나타났다. 딴사람이 되어 주먹을 불끈 쥐고 목청을 돋구며 'a little giant'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박근혜의 성격에 대하여 심한 한마디를 나에게 알려준 이가 꼭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최규하가 잠시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을 때 문교부 장관이던 나의 누님 김옥길이었다. 그는 영남대학의 이사회 문제로 박근혜를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박근혜는 문교부 장관을 향해 "우리 아버지가 뭘 잘못한 게 있습니까?"라며 따지고 드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 하고 내 귀에 대고 "그 젊은 여자 되게 교만하더라"고 일러주었다.

그래도 나는 18대 대선에서 문재인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전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밀었다. 이것이 내가 나서서 도울 수 있는 마지막 선거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하면서. 그러나 그는 그 타고난 교만 때문에 여당을 분열시키고 총선에서 패배하여 '선거의 여왕' 자리를 박탈당했고, 그는 그 교만 때문에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고, 그는 그 교만 때문에 헌법재판소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고 20일쯤 뒤에는 영어의 몸이 되었다.

'수인번호 503'은 그의 교만이 그의 가슴에 달아준 명예롭지 못한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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