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명재상 황희는 눈빛이 날카롭기로 유명했다. 일설에 의하면 심약한 사람은 그 눈빛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기가 꺾였다고 한다. 안광(眼光)에 관한 한 속칭 '넘사벽'인 황희 정승을 좌절시킨 존재가 있었다. 뜻밖에도 사람이 아니라, 삽살개였다. 황희의 형형한 눈빛을 받고도 삽살개는 전혀 꿀리지 않고 매섭게 황희를 노려봤다. 삽살개가 귀신을 쫓는다는 옛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삽살개를 눈싸움으로 제압하지 못한 황희는 한탄했다. "나도 이제 죽을 날이 다 되었구나!"
황희 정승은 타인의 눈을 수시로 응시한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깊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웬만해서 남과 눈길을 정면으로 마주쳐서는 안 된다. 동물 세계에서는 눈을 응시하는 행위 자체가 싸우자는 의사 표시로 해석되며 여기에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노려보는 시선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특히 상대방이 자신보다 강자라면 그 눈길을 받는 것 자체만으로 간담이 서늘해진다. 이는 호랑이나 늑대 같은 맹수의 눈길을 경험했던 선사시대 인류의 본능 탓이다. 포식동물의 눈동자는 수직형인데 아주 매섭게 느껴진다. 수직형 눈동자는 전방의 물체에 집중하는 데 유리하게끔 진화된 결과다.
반면, 동그랗고 커다란 눈동자는 순해 보인다. 소나 말과 같은 초식동물의 눈이 그렇다. 둥그런 눈동자는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초식동물의 눈은 포식자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내기 쉽게끔 진화했다. 크고 둥근 눈동자에 사람들이 호감을 느끼는 이유는 초식동물의 눈길 자체가 위협이 아니라는 본능적 직감 때문이다.
눈은 영혼의 창이자 드러난 뇌라고 했다. 눈동자로 많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기에 우호적인 마음을 눈길에 담는 것이 인간관계에 좋다. 그런데도 눈에서 레이저라도 쏠 듯이 사람을 노려보는 이들도 있다. 직장 상사가 그렇고, 을에 대한 갑의 눈길이 그렇다.
레이저 눈빛에 관한 한 박근혜 전 대통령만큼 많이 회자되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레이저 눈빛을 받고 등골 오싹한 경험을 한 각료들이 적지 않은데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정유라 승마 지원에 대한 불만과 질책을 듣고 "대통령이 화났을 때 눈빛이 레이저를 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고 측근들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그러나 눈에서는 레이저는커녕 그 어떤 빛도 나올 수 없다. 눈빛은 눈매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경험한 레이저 눈빛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막강한 권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자신보다 지위가 높고 강한 사람이 노려보면 사람은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게 돼 있다. 역설적인 것은 우리 사회의 슈퍼 갑 중 슈퍼 갑인 이 부회장 역시 알게 모르게 아랫사람들에게 눈빛 레이저를 쏘아댔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레이저 눈빛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레이저 눈빛을 가능케 하는 것은 권력이고 그 이면에 권위주의라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황희 정승도 눈빛이 날카롭다고 소문날 수 있었던 것은 왕 못지않은 그의 권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권세가 사람에게 통했는지는 몰라도 물빛 모르는 삽살개에게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이 아닐까.
여기 레이저 눈빛에 관한 한 빼놓을 수 없는 이가 한 명 더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지난해 11월 검찰에 출두했을 때 그는 혐의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묻는 기자를 향해 강렬한 눈 레이저를 쏘아댔다. 청와대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때야 그의 눈빛이 오금을 저리게 했을는지 모르지만, 끈 떨어진 그가 쏘는 눈빛은 그저 예의 없는 행동이었을 뿐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최근의 세 번째 검찰 출두에서는 태도가 확 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친정인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마저 청구된 상황이니 눈빛도 힘을 잃을 만하다. 그래서 화무는 십일홍이고 권력은 무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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