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글로컬 시대, 미래를 보며 세계를 향해

한국외국어대(스페인어 전공) 졸업. 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전 외교부 중남미 전문가 자문위원. 현 한·칠레협회 이사
한국외국어대(스페인어 전공) 졸업. 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전 외교부 중남미 전문가 자문위원. 현 한·칠레협회 이사

코이카 봉사단 선발과정 눈여겨볼 만

성적표·출신보다 투철한 사명감 중시

학벌로 발목 잡는 기업문화 무시해야

지방민에 세계의 문 크게 열려 있어

오래전 연구년을 맞아 멕시코에서 1년가량 체류할 때 14세 딸아이를 미국 학교에 보냈는데, 멕시코의 국어인 스페인어는 전혀 할 줄을 몰랐고 한국에서 배운 짧은 영어만 갖고는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정착 초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미국 학생이건 멕시코 학생이건 대부분이 최상류층 자제들인지라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에 속했던 딸아이는 백인이 주류인 동급생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를 못했다. 수준이 한참 아래인 동양 여자아이를 안 끼워주는 배타적 분위기 탓에 왕따는 아니었지만 한동안 점심도 혼자 먹어야 했고, 급기야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훌쩍거리기가 다반사였다.

다행히 같은 반에 동양인인 일본계 여학생이 있어 심리적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입학 몇 달 후엔 수업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다. 다만 원래 수재형도 아니었기에 영어와 스페인어로 과제를 소화하고 시험을 치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당연히 성적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1년이 다 된 시점에서 우리 기준으로 볼 때는 상상도, 기대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몇 명 안 되는 미국 대통령상 수상자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단기간에 이룬 학업 성취도가 높았고 장래성을 봤다는 것이다. 통상적인 석차순이 아니란 말이다. 변변한 상품도 없는 상장 한 장이었을 뿐이지만 지방 읍 지역의 여중 출신인 딸아이의 기가 완전히 되살아났음은 물론이다.

이해 당사자가 많지 않아서인지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되지는 못했지만 국내에선 이와는 대조적인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졸자 또는 2년 이상 수료자로 응시 자격을 제한하는 사관학교 장교 후보생을 뽑는데 4년 전의 대학 수능 성적을 내라는 것이었다. 이미 대학을 졸업했는데 대학 수학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 성적을 요구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웠지만 이 성적이 무슨 신분증도 아닌데 대학 생활을 모범적으로 열심히 한 젊은이들이 4년 전의 성적으로 좌절을 겪고 낙망하는 일을 국가 기관이 버젓이 일으킨 것이다. 성적 지상주의와 같은 비교육적 일, 그리고 현재의 실력과 자세보다는 과거의 출신과 배경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정부가 치유하기는커녕 조장하는 격이었다.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다면서 참다운 대학 생활을 강조했던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 20년 전부터 글로벌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고 명색이 OECD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그랬다.

그렇다고 모든 국가 기관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면에서 외교부 산하 국제협력단인 코이카의 해외봉사단원 선발이나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해외취업연수 제도도 바람직하고 눈여겨볼 만한 사례다. 코이카의 해외봉사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투철한 사명감이 제일 중요함은 물론이고 현지에서 요구하는 자격 기준에 맞추어야 하기에 과거의 성적표와 출신보다는 자격증과 경험 그리고 사람됨을 우선으로 평가한다. 산업인력공단의 해외취업 지원 프로그램은 현재 수준이 떨어지더라도 계발을 통해 취업 능력을 갖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나 구직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을 오히려 배려하고 있다. 낯설고 물선 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기에 현지 언어 능력이 어느 정도 요구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직무 자세와 적성,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진출하고 도전하는 적극적 자세를 아주 중요하게 본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일류, 이류 논쟁이나 수도권과 지방을 차별하는 폐습은 외국에 나가보면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이해도 안 되는 부질없는 일임을 알게 된다. 한국적 폐습과 편견으로 인해 인정을 받지 못하고, 능력도 있고 사람됨도 좋은데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들이 기를 펴고 활약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은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곳곳에 널려 있다. 과거의 성적과 학벌로 발목을 잡는 그런 곳은 무시하면 된다. 갈 곳을 모르는 젊은이들은 해외 신흥 지역에서 봉사단원으로, 관리직으로 수년간 근무하고 정착한 선각자들의 성공 사례를 보면서 세계를 활동 무대로 삼아보면 어떨까? 두드리는 사람에게 밝은 미래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국제화와 지방화가 하나로 엮어지는 글로컬 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뜻있는 지방민에게 세계는 더 크게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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