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사→대학교수→동네의사
사회 새 변화 따라 원하는 길 길어
진통제·소염제 줄이고 운동 처방
해외의료봉사 관심, 매달 후원금
김승희(49) 시지본정형외과 원장은 환자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어깨 인대를 다친 노인 환자가 표정을 찡그리면서도 "괜찮다"고 하자, 김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은 게 아닌데? 할매 표정이 심상찮은데?"
김 원장은 살가운 말투로 환자가 다쳤던 상황을 자세히 캐물었다. 가령 손가락이 어느 방향으로 젖혀졌는지, 무언가에 맞았거나 때린 건 아닌지 사소한 정보도 확인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진단 결과부터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환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라는 게 이유다. 그는 환자에게 X-선 사진을 보여주며 환자가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충분히 설명했다. "의사가 환자 앞에서 고민하면 환자는 불안해지거든요. 내가 내린 진단에 확신을 갖고 상태가 좋으면 '괜찮다', 문제가 있으면 '큰일 났다'고 명확하게 얘기하고 환자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야 해요."
◆대학병원 교수와 동네 의사를 오가는 삶
김 원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개원의와 대학병원 교수, 동네 의사를 번갈아 경험했다. 곽병원에서 정형외과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한빛정형외과의원을 개원했고 8년 뒤 구미 차병원에 정형외과 교수로 부임했다. 지금은 다시 동네 의사가 됐다. 그는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때그때 마음이 원하는 길을 따라갔다"면서 "아내가 결정을 존중해주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하며 대구 최초로 어깨 관절경 수술을 한 최창혁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에는 어깨 관절경 수술에 필요한 수술 기구가 없어 병원 설비과를 드나들며 직접 만들기도 했다. "어깨에 생리식염수를 넣는 펌프가 없어서 철봉에다 생리식염수를 매달아 대용 기구를 만들었어요. 교수님이 유용하게 쓰셨을 겁니다."
어깨너머로 배운 의술을 발휘할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군의관으로 원주국군통합병원에 배치됐고, 어깨 인대가 손상된 군인의 관절경 수술을 맡았다. 밤잠을 설쳐가며 수술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2년간 곽병원에서 근무한 뒤 수술실과 입원실을 갖춘 정형외과의원을 차렸다. "척추 골절 수술 외에는 모든 수술을 했어요. 당시 어깨 관절경 수술을 하는 개원의는 저밖에 없었을 겁니다. 설과 추석 당일 빼고는 매일 오전 9시부터 12시간 동안 근무를 했어요."
그는 환자들이 밀려들던 정형외과의원을 갑작스럽게 정리했다. 수술 환자가 점점 줄어든 탓이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그는 '칼잡이'의 삶을 살고 싶었다고 했다. "칼잡이가 칼을 놓으면 '정형내과' 원장밖에 더 되겠습니까? 구미차병원에서 족부 질환 분야를 도맡아 수술했어요. 새로운 도전이라 의미가 깊었고, 전공의들을 가르치는 재미도 느꼈죠."
◆정도(正道) 걸으며 운동 전도하는 동네 의사
그는 지난 2015년 교수직을 내던지고 다시 동네 의사가 됐다. 하지만 그토록 원했던 수술은 포기했다. "정형외과 수술의 의료수가가 너무 낮고, 아예 삭감되는 일도 비일비재해요. 동네의원에서 수술실을 운영하면 적자가 나는 거죠. 지금 내 나이가 칼잡이로 빛을 볼 나이인데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대신 그는 정확한 진단으로 수술 필요성을 판가름해주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 비싼 비급여 진료나 수술을 권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기로 다짐했다. 환자에게 필요 이상의 소염제나 진통제를 처방하지 않는 것도 그의 원칙이다. 김 원장은 "아이를 데려온 엄마들이 '약 좀 달라'고 조르거나 근처 약국에서 '약 처방을 너무 안 한다'고 불만스러워한다"고 했다.
대신 김 원장은 환자에게 운동 처방을 내린다. 그의 진료실 책상 아래에는 아령이 놓여 있었다. 허리 추간판탈출증으로 20년 동안 고생한 그는 운동을 시작하며 진통제를 끊을 만큼 상태가 나아졌다. "10년 전쯤 애들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수영을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허리 통증이 낫는 거예요. 우연히 운동의 효과를 실감한 거죠. 요즘은 헬스클럽을 다니면서 환자들에게도 '운동하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해요."
운동과 수영, 클라리넷, 첼로 등 취미활동만 하던 그는 요즘 들어 해외 의료봉사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의료봉사단체 '더 써드 닥터즈'에 매달 후원을 하면서 이사까지 맡았다. "의과대 학생 시절에 의료봉사단에서 오래 활동했는데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요. 아직 병원이 자리 잡히지 않아서 긴 시간 병원을 비우긴 어렵지만 휴가를 내서라도 해외 의료봉사를 떠날 생각입니다."
사진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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