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수(保守) 유권자들은 요즘 답답하다. 최근 30년 동안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후보'가 이번처럼 맥을 못 추는 예는 없었다. 선거 때마다 40% 안팎의 지지를 받는 유력 후보가 늘 있었다. 보수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유권자 입장에서는 표를 던질 확실한 후보가 있었다.
2017년 대통령 선거는 이전 선거와 상황이 판이하다. 보수 후보들의 지지율이 낮다 보니 그들에게 표를 주더라도 사표(死票)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보수 성향의 유권자 중 상당수가 '가장 싫은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호하지만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보'가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높고 덜 싫은 후보'를 지지한다고 한다.(여론조사와 정치평론가들의 형세 분석으로 볼 때 그런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최선의 선택이 어려울 때 최악을 피하려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싫은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덜 싫은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 과연 '최선' 대신 '차선' 혹은 '최악' 대신 '차악'을 택하는 것일까? 이는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2017년 한 번으로 끝이라면, 그래서 이번에 대통령이 되는 사람이 영구 집권하게 된다면 '최악' 대신 '차악'이라고 생각되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먼 길을 가야 한다. 지금 한국의 보수가 해야 할 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수의 단점을 개선하고, 무기력에서 벗어나 지리멸렬한 세(勢)를 결집하는 것이지, 당선 가능성에 따라 이 후보, 저 후보를 번갈아 쳐다볼 때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스스로 '폐족'이라 일컫던 세력이 낯을 빳빳하게 드는 데 5년도 걸리지 않았다.(2012년 대선에 문재인 후보 출마) 하물며 대한민국이 가야 할 먼 길을 생각하면 보수가 주류에서 밀려나 지내야 할 5년, 10년은 긴 세월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 평가가 뚜렷하게 갈리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를 이만큼 부유하게 만든 것은 '한국의 보수'다.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국민들이 분발심을 갖도록 자극한 것도 '한국 보수의 업적'이다. 지금은 그것이 지나쳐 '무한 경쟁 사회'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 이전의 많은 한국인들은 '일 시켜놓고 감시하지 않으면 장승 될까, 걱정이 될 만큼' 무기력하고 무책임했다.
'비인간적인 무한 경쟁'은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국민성 역시 타파되어야 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세련된 태도와 넓은 시야, 국제인의 감각을 갖출 수 있는 것도 선배 세대가 쉬지 않고 부(富)를 축적하고 '나라 꼴'을 갖춘 덕분이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었던 한국의 보수는 '몸뚱이' 하나로 이 나라를 건설했다. 아무리 야박하게 평가한다고 해도 한국을 이만큼 키워낸 장본인이 보수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보수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세월은 변했고, 지금은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와 다른 가치가 필요하다.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약간의 편법은 괜찮다'는 생각은 '굶주림'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 보수의 인식 중에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는 말이다.
갖은 애를 써서 대한민국을 키우고 이끌고 온 보수가 '어렵다'고 해서 보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어려운 상황임을 받아들이고, 보수의 가치를 지키는 한편 더 나은 보수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지, 여기저기 기웃거릴 때가 아니다. 어쩌면 한국의 보수에게는 그것이 '최악'인지도 모른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시라. 그들은 당선되지 않을 줄 알면서도, 심상정 후보를 지지한다. 그렇게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지키고, 조금씩 현실로 만들어간다. 한국 사회의 주류였던 '보수'에게 작금의 대선 상황이 낯설겠지만, 사람은 낯선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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