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장미와 민들레

5월에 치르는 대선을 언론들에서는 '장미 대선'이라고 표현한다. 4월에 대선을 치를 확률이 생겼을 때 '벚꽃 대선'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다가 한 달이 늦춰지자 '장미 대선'이라는 말로 대체가 된 것이다. 4월에는 우리나라 어디서나 벚꽃이 만개하니까 '벚꽃 대선'이라는 말에 수긍이 가지만, 우리나라에서 장미가 5월을 대표하는 꽃인지는 의문이 든다. 장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아닌데다 5월이 아니더라도 온실에서 재배한 장미꽃들이 사시사철 나오기 때문이다.

꽃 피는 철도 그렇지만 장미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의미도 이번 대선과는 약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미는 영국의 랭커스트가와 요크가가 30년 동안 벌인 30년 전쟁, 즉 '장미 전쟁'의 장미이다. 이 전쟁을 장미 전쟁이라고 하는 이유는 두 집안 모두 장미를 집안의 문양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뷰티'와 같은 영화 장면들에서는 흩날리는 장미 꽃잎들이 사치와 허영을 상징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남녀가 프러포즈를 할 때 사용하는 특별한 꽃이기도 하다. 그만큼 장미는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화려하고 귀족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꽃이다.

'장밋빛 스카프'를 한 여인은 수수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이 아니라 화려해서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여인이다. '장밋빛 전망'이라고 하면 매우 아름다워 보이지만 내실이 없고 허황되었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그 이유는 모두 화려하기 그지없는 장미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월 대선 전후로 우리 주변에서 벚꽃만큼 흔히 볼 수 있는 꽃은 철쭉이다. '벚꽃 대선'과 같은 원리로 말을 만든다면 '철쭉 대선'이 보다 정확한 말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철쭉은 장미나 벚꽃만큼 유명하지 않아서 쓰기에 부담이 있을 수 있다.(어릴 적에 참꽃인 줄 알고 꽃잎을 먹었다가 배탈이 났던 기억은 강렬하다.)

대선 전후에 흔히 볼 수 있는 또 다른 꽃은 민들레이다. 민들레는 산과 들뿐만 아니라 보도블록 틈새와 같은 척박한 땅이라도 뿌리내려 한 줌 흙만 있으면 핀다. 그래서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서민들과 같은 꽃이다. 꽃이 진 자리에 남아 가볍게 퍼져 나가는 홀씨는 꽃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민들레는 장미에 비하면 수수하기 그지없는 꽃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지나쳐 허황되기까지 해 보이는 장미와 달리 민들레는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놓여 있는 환경은 꽃이 자라기 힘든 척박한 땅과 같다.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것이 이번 대선의 과제라면 '장미 대선'보다는 '민들레 대선'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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