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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익기 "사산비명 최초 필사본" 고서 공개

매일신문·일부 학자 통해 알려와…광해군 시절 "첫 필사본" 이번 서책에 적힌 시기와 비슷

배익기 씨가 매일신문에 공개한 최치원의 사산비명 필사본 마지막 장. 만력 무오년 8월(광해군 10년
배익기 씨가 매일신문에 공개한 최치원의 사산비명 필사본 마지막 장. 만력 무오년 8월(광해군 10년'1618년)에 가야산 홍류동 봉황대에서 남평 사악이 작성했다고 기록돼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인 배익기(54) 씨가 지난 21일 한글로 주석을 단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 최초 필사본(손으로 글을 써서 만든 책)이라고 주장하는 고서를 매일신문과 일부 학자들에게 공개했다. 학계는 "진품이라면 매우 학술적 가치가 크다. 확인이 더 필요하다"면서도 진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사산비명은 신라 말기 학자 최치원이 지은 비문 가운데 신라의 불교사를 비롯해 한문학사'사상사 등 자료적 가치가 높은 네 편을 뽑아 엮은 책이다. 문헌과 학계에 따르면, 첫 필사본은 조선 광해군 때 작성됐다고 한다. 승려인 해안이 최치원의 시문집인 '고운집'에서 이 네 가지 비문을 뽑아 책으로 엮고 주석을 붙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또 광해군 전후에 철면(鐵面) 노인이라는 사람도 '고운집'에서 네 가지 비문을 뽑아내 이름 붙였다는 설이 있지만 조선시대 간행된 목판본만 전해올 뿐 붓으로 직접 쓴 필사본 고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배 씨가 공개한 고서는 실제 광해군 때 작성된 필사본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고서는 A4용지와 비슷한 크기로 총 52장, 104쪽의 한지에 최치원의 사산비명 비문 내용을 담고 있는데, 특히 마지막 장에 지은이와 제작 연도, 집필 장소 등이 분명히 기록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만력 무오년 8월에 가야산 홍류동 봉황대에서 남평 사악이 작성했다'고 기록돼 있는데, 만력 무오년은 명나라 신종 45년 되던 해로 광해군 10년인 1618년에 해당한다. 가야산 홍류동은 최치원의 독서당이 있던 곳으로 현 합천 해인사 부근이며, 남평 사악은 남평이란 본관을 가진 사람의 호 또는 승려로 추정된다. 합천에는 남평 문씨 세거지가 있다.

본문은 충남 보령시 성주면 숭엄산 '성주사대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명'(국보 제8호),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쌍계사진감선사대공령탑비명'(국보 제47호), 경북 경주시 외동면 초월산 '대숭복사비명', 경북 문경시 가은면 희양산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명'(보물 제138호) 등 네 군데 비명에 기술된 각기 다른 내용을 한글 주석을 섞어 담고 있다. 이들 중 대숭복사비는 파괴돼 비문만 전해오고 있다.

매일신문의 감정 의뢰를 받은 임노직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장 등 일부 학자들은 "지금까지 최치원의 사산비명과 관련된 언해 목판본은 전해오고 있으나 책 한 권으로 구성된 필사본은 국내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진품으로 확인되면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했다. 임노직 관장은 "목판본의 내용을 이 필사본으로 옮겨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분석을 더 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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