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 상옥 'ICT 창조마을' 주민 갈등] 국·시비 6억 들인 사업에 예산 집행 관리·감독 없어

유네스코 무산 뒤 의혹 제기 '스마일 빌리지' 추진위가 주체

포항 북구 죽장면 상옥리의 상옥복지회관. 스마일빌리지 상옥 영농조합법인의 사무실이 이곳에 있다.
포항 북구 죽장면 상옥리의 상옥복지회관. 스마일빌리지 상옥 영농조합법인의 사무실이 이곳에 있다.
체험형 관광안내 앱
체험형 관광안내 앱 '상옥캠프'
서리방지용 방상팬
서리방지용 방상팬

공업도시 포항에서 상옥은 매년 1억여원의 정부 친환경사업 지원금을 받을 만큼 지역의 마지막 청정마을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곳에 6억원이 넘는 정보통신기술(ICT) 창조마을 조성사업이 진행되면서 상옥 주민들의 마음에 의혹과 불신이 싹텄다. 사업이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게 진행됐다는 이유다.

◆상옥 슬로시티에서 시작된 주민 갈등과 의혹

상옥 스마일빌리지의 원래 이름은 상옥 슬로시티였다. 슬로시티 이름은 청정마을 상옥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2006년 사용하기 시작했고, 당시 슬로시티 추진위원회도 조직됐다. 또 추진위 이름을 딴 영농법인이 설립돼 청정마을 이미지를 위해 무농약 채소 등을 생산하는 데 노력했다. 2013년에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친환경꾸러미 사업에 선정되는 등 청정 이미지를 알려왔다. 그러나 2009년 법인 대표, 2015년 추진위 위원장 등이 각종 구설과 소나무 무단 훼손 등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나면서 유네스코 등재 운동은 열기가 식었다. 결국 등재에 실패, 지난해엔 '슬로시티'라는 이름도 더 쓸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추진위는 유명무실해졌고, 영농법인도 이름을 '스마일빌리지 상옥 영농조합법인'으로 바꿨다.

유네스코 등재가 무산되자 주민들은 참고 있던 갖가지 의혹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주민 A씨는 "추진위 운영 당시 핵심위원들은 실제 유네스코 등재보다는 보조금을 빼내 법인 운영비로 우선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민 60%가 등을 돌렸다"며 "대표성을 상실한 추진위였지만, 시는 상옥을 대표하는 주민협의체로 보고 거의 모든 사업을 이들에게 맡겼다. 이런 일은 2016년에도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의혹 속에 시작된 ICT 창조마을 조성사업

상옥 ICT 사업은 지난해 '슬로시티'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사업이 시행된 같은 해 7월 시는 '창조마을 조성사업 시행계획'에서 황당하게도 슬로시티 추진위에서 이름을 바꾼 '스마일빌리지 상옥 추진위원회'를 사업 주체로 이름을 올렸다. 해당 이름의 법인이 있는 상황에서 '추진위'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런 사업 주체와 SK컨소시엄이 6억4천만원의 ICT 사업을 시작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법인과 추진위 구성원 상당 부분이 겹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법인 이사 B씨는 "주민 협의는커녕 공개도 않고 진행된 부분이 있다. 마을 사업이 아니라 사무장이나 대표이사가 주도한 법인(추진위) 사업이었다"고 했다. 한 예로 스마트 팜 사업의 경우 자부담이 없어야 하는데도 자부담 20%를 농민들로부터 받았고, 이의를 제기한 농가는 지원받지 못했다.

농민 C씨는 "3천500만원 사업에 700만원을 자부담했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방상팬이 고정되지 않은 채 좌우로 요동쳤고, 다른 장치에도 이상현상이 보였다"며 "과수 자동 급수장치도 엉터리로 설치돼 모두 다시 손을 봐야 했다. 현재는 아예 작동을 멈춘 것도 있다"고 했다.

6천9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간 체험관광안내 시스템도 문제였다. 시스템 제작업체 선정은 금액이 많다 보니 공개입찰을 해 적정 업체를 뽑았어야 했다고 주민들은 강조했다. 제작업체는 과거 상옥에서 팜파티 등을 주최하며 추진위 핵심인물과 가까워진 서울 K업체였다. 시스템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상옥캠프'와 QR 코드로 이뤄져 있다. 관광객이 농장 입구에 설치된 QR 코드를 앱으로 읽으면 생산 품목과 생산자를 알려주는 게 원래 목적이었다. 하지만, QR 코드와 마을 지도가 새겨진 나무판 5개, 앱만으로는 6천여만원의 예산집행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주민들은 설명했다. 주민 D씨 등은 "이는 1천만원 정도로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사업별 주민교육'역량강화 예산 1천760만원이 잡혀 있었지만, 교육을 받았다는 주민이 소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이 부분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름에 불붙이는 포항시와 사업 시행업체들의 허술한 해명

지난 20일 상옥복지회관에서 진행된 'ICT 기반 창조마을 사후관리 설명회'는 각종 의혹을 밝히자는 의미로 올 초 새로 구성된 법인 집행부가 주최했다.

이 자리에서 체험형 관광안내 시스템 개발 K업체는 "단순 QR 코드가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농원 생산물을 소개하고 맛보도록 설계됐다. 사무실에 보관된 여러 개의 QR 코드를 농가에 숨겨, 보물찾기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며 "시스템은 유효하고, 서버에 보관돼 있다. 현 집행부에 잘 설명을 드리겠다"고 했다.

스마트 팜 시행업체 관계자는 "방상팬을 설치한 다른 곳에는 바닥을 일(一) 자로 설치했어도 문제가 되지 않아 상옥에도 그렇게 설치했다"며 "시공팀을 보내 농가가 원하면 십(十) 자로 설치해 흔들리지 않게 하겠다. 다른 사용이 안 되는 부분은 수리하거나 자세한 사용설명을 하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SK컨소시엄 관계자는 "모든 부분을 설명회를 통해 알려 드렸다. 사업설명회 때 오셨느냐"고 되물었다. 포항시 관계자는 "이 사업은 SK와 상옥이 서로 진행한 것인데, 왜 예산 집행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시에 묻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행정에서 일일이 모든 일을 다 봐야 하느냐"고 반박했다.

법인 대표는 "자부담 부분은 지난 집행부가 법인 운영비로 쓰려고 거뒀다. 전 사무장과 총무가 과도하게 월급을 받은 부분 등을 조사하고 있다. 현 집행부를 믿고 마을 안에서 조용히 해결하자"고 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이렇게 분란이 일어날 바에는 외부 감사 요청이나 검'경에 수사 의뢰를 하자"며 "지금 이대로라면 앞으로 상옥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