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이강철, 이상득, 최경환

지금은 많이 잊힌 인물,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그는 노무현 참여정부 때 막강 실세였다. 그 정권에서 완전 찬밥 신세였던 대구경북의 민원을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가장 많이 해결해준 인물이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핵심 사업을 예산에 반영시키고 중앙정부에서 소외됐던 지역 출신 고위 공무원들을 챙겼다. 당시 TK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전신) 국회의원들도 민원을 그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이 전 수석과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대구경북, 부산경남 상임대표 시절 만나 의기투합한 이후 우정을 쌓았다. 대선 후보 선출과 대통령 당선 과정에 상당한 역할을 한 공로로 참여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의 민원 창구 역할을 한 것이었다.

전성기가 10년도 더 지난 인물 얘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이번 대선 이후 대구경북의 위상이 걱정돼서다. 이명박정부나 박근혜정부에서는 적어도 소통 창구가 없어서 지역 현안을 해결 못 한 경우는 없었다. 청와대, 정부 요직에 있었던 TK 인사 숫자야 기대보다 적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발언에 엄청난 힘이 실리는 인물들이 있었다.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 최경환 전 경제 부총리가 대표적이다.

아무리 눈을 돌려봐도 다음 정권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지역 출신으로 선거전에 뛰어든 인물들은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대구경북 국회의원 대부분이 밀고 있는 후보도 막말과 부적절한 처신으로 리더다운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는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는 지역과의 연고성이 없다. 캠프에서 지역을 대표할만한 인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경북여고 출신이긴 하지만 지역과는 거리를 둔 인물이다. 한 표가 아쉬운 야당 때도 지역의 대표적인 행사에 얼굴 한 번 내밀지 않았는데 아쉬울 거 없는 집권 여당 대표가 뭐하러 지역 현안을 챙기겠는가. 야당 불모지 대구에서 당선되면서 한때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르기도 했던 김부겸 국회의원은 문 캠프에선 존재감 상실이다. 그렇다고 이강철과 노무현처럼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문재인과 맺어진 지역 인사도 찾기 어렵다.

안철수 캠프도 마찬가지. 청춘캠프를 안철수와 공동으로 진행하며 그를 일약 스타로 등장시킨 안동 사는 시골의사 박모 씨가 있지만 그가 지역 현안에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있을까.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비록 전남 목포가 지역구이지만 김대중정부 때부터 대구경북의 현안 해결에 적극적이던 인물이어서다. 그렇다고 해도 그에게 지역 대변자 역할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밖에도 숫자상으로야 다수의 지역 인사들이 양 캠프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들이 지역을 대변하기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향후 5년은 대구경북 사람들에게 혹독한 시련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공직자들은 주요 보직에서 밀려날 것이고, 공공기관장 자리에 지역 인사 등용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수 있다. 현안 사업도 공식적인 경로를 통하지 않고는 정권 요로에 전달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대구시와 경북도의 책임도 크다. 캠프와 적극적인 교류는 못한다 해도 비공식 실세 라인들과 접촉하면서 언제든지 물밑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급부상한 안철수는 그렇다 쳐도 문재인은 민주당 대권 주자로 나설 가능성이 높았지만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했다. 대선 주자가 없으면 인맥 관리라도 해놓아야 하는데 말이다.

유력 대선 후보를 2명이나 보유한 부산은 지금 엄청난 기대를 갖고 향후 발전계획을 설계 중이란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고 부산만 부러워할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캠프의 실세와 친하지 못하다 해도 그 실세와 누가 친한지, 누구를 통하면 후보와 실세에 접근되는지를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이강철, 이상득, 최경환이 없는 빈자리를 한탄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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