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법언(法諺)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남긴 말이다. 예전에 법대 학생들은 이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지난해 12월로 기억된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대검찰청 확대간부회의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에트'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칸트의 명언을 인용했다. 중대 사건을 지휘한 검찰총장이 깊은 고심 끝에 내놓은 소신 발언이었다.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전원 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구속됐고, 지난 17일 기소됐다.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 직전 대통령도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정의는 세워졌다고 할 수 있다.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법언(法諺)이 있다. 법불아귀(法不阿貴). 언뜻 들으면 불경에 나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엄격하고 깊은 뜻을 가진 법언이다.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법은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다'라는 의미. 중국 전국시대 한비자(韓非子)가 외저설(外儲說) 유도(有度) 편에서 역설한 내용이다. 해당 문장은 이렇다. '법은 신분이 귀한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고, 먹줄은 나무가 휘었다고 해서 구부리지 않는다.'(法不阿貴 繩不撓曲'법불아귀 승불요곡)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몇몇 법언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법언은 법에 관한 격언을 말한다. 주로 법의 원칙이나 법철학을 설명한다. 법조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강조하는 법언도 있다.

귀에 익숙한 법언 하나 소개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자신의 권리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사법 체계의 대원칙이다. 학창 시절, 법대생 친구에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거부감이 앞섰다. "법이 그렇게 냉랭해도 되는가, 법을 모르는 사람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이 법언은 독일의 법철학자 루돌프 폰 예링의 저서 '권리를 위한 투쟁'(1872년)에 나온다. 예링은 자신의 권리를 적극 주장하는 것이 법과 정의를 지키는 시민의 의무라고 본 것이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에게 법의 생명은 투쟁이다. 그는 시민들이 투쟁 속에서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주권 의식과도 일맥상통한다. 촛불집회는 그런 측면에서 예링이 강조한 잠든 권리를 되찾기 위한 '법적 투쟁'이었다.

시민들이 지난겨울 차디찬 광장 바닥에서 힘들여 쟁취한 권리는 5월 9일 대선에서 완성될 것이다.

어제(4월 25일)는 제54회 법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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